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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공익활동가주간][활동가, 전환을 말하다] 나는 날마다 ‘거울’ 앞에서 묻는다 - 산청의 청년 · 문화예술 · 공동체를 아우르는, 활동가 송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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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인터뷰 - 활동가, 전환을 말하다]

나는 날마다 ‘거울’ 앞에서 묻는다 
산청의 청년 · 문화예술 · 공동체를 아우르는, 활동가 송한나




17년을 학교 선생님으로 살았다. 울산과 거창을 거쳐 산청에서 지속해오던 교사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지역 활동가로 걸음을 내디딘 건 2024년 2월의 일이다. 남들에게는 갑작스럽고 조금은 충격적인 결정으로 보였을지 모르나, 정작 당사자인 송한나는 사뭇 덤덤했다. 뭔가 특별한 사건이 일상을 뒤흔든 것은 아니라 했다. 달이 차고 기울거나 계절이 바뀌어 가듯, 오히려 그저 “때가 되어 일어났을” 뿐이라는 얘기다. 


“평생 교사를 하겠다는 목표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어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갔는데 17년쯤 하고 나니 지금이 딱 그 시기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제까지와는 다른 두 번째 삶을 살아보자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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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중순, 산청 청년들이 함께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 <카페 남다른이유>에서 활동가 송한나를 만났다. 



학교 ‘너머’에서 시작된 두 번째 삶  


어릴 때부터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데 관심이 많았던 한나는 대학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했다. 전공이 전공인 만큼 자연스럽게 교사라는 직업과 연결되었고, 자신이 영어 공부에서 느끼는 기쁨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마냥 좋아서 “이렇게 계속 교사로 살아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나는 아이들과 사랑을 주고받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겼음은 물론이다. 


학교생활에 충만함을 느끼던 그가 학교 바깥으로 시야를 넓히기 시작한 것은 아이를 낳고부터다. 태어나자마자 아토피에 백신 부작용으로 고통을 당하는 작은 생명체를 보면서 그는 비로소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는 생태환경과 먹거리에 대한 탐구, 자연과 새로운 관계 맺기로 이어졌다.



“울산에 살다가 아이들을 아파트에서 키우지 않겠다고 결심하고는 경주에 집을 지어 이사했어요. 온 산을 헤매고 다니며 산야초 공부도 열심히 했고요. 산청으로 옮긴 후에는 교육 공동체인 <민들레> 활동을 하고 <목화장터>도 나가고 했지만, 제가 가장 시도하고 싶었던 건 교사로서 지역과 아이들을 연결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아이들과 지역 문제를 탐색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활동도 해봤는데 생각보다 학교가 폐쇄적이더라고요. 군청도 마찬가지고. 협업을 좀 하려고 해도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는 대답만 돌아오니까 좀 답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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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시절 학생들과 함께한 ‘제로웨이스트’ 활동. 아이들이 쌀 포대를 활용해 포스터를 만들고 있다. (이하 사진 한나 제공) 



알게 모르게 실망이 쌓여가던 중, 그는 어느 순간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현행 입시제도와 제도교육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교사는 어찌 됐든 대학에 가고자 하는 아이들을 그 방향으로 안내하는 길잡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온몸을 아프게 찔러대기 시작한 것이다. 


학교 너머로 촉수를 뻗쳐 지역의 여러 이슈에 관심을 보이고 힘을 보태면서도 학내에서는 또한 아이들을 진학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왔던 그에게, 이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 아니라 새삼스러운 ‘자각’에 가까웠다. 그러자 대학에 뜻이 없거나 혹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아이들이 더더욱 눈에 밟혔고, 사회가 정해준 ‘안전한’ 길을 선택해 걷고 있는 자신이 그들에게 다양한 가능성 운운하며 뭘 해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게 과연 맞나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교사 시절 초기에 가졌던,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믿음이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결심으로 바뀐 건 그즈음이다. 



“제가 수업 자료로 종종 활용했던 게 바로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문인데요, 그는 한때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물었다고 해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하려던 일을 할 것인가?’라고요. 만약 노(no)라는 대답이 연속해서 이어진다면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걸 찾아야 한다는 게 잡스의 메시지죠. 2년 전 저의 대답은 ‘노’였어요. 그래서 주저 없이 그만둘 수 있었던 거고요.”



No가 Yes로, 상상은 현실로     


활동가로 직업을 전환했다고 해서 당장 해야 할 뭔가가 있는 건 아니었다. 교사이던 시절 학교 밖의 평일 낮 풍경이 못내 궁금했던 그는 우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은 친구들과 텃밭에 갔고, 어느 날은 여럿이 모여 앉아 바느질을 했다. 또 지역의 변화를 꿈꾸는 이들의 아지트인 <카페 남다른이유>에 앉아 오가는 이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사소한 농담을 주고받거나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관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Arte)에서 주최하는 ‘2024년 예술로어울림’ 사업공모에 <산청청년모임 있다(이하 있다)> 이름으로 제출한 한나의 기획안이 당선되면서, 그와 친구들은 그때까지 상상만 해오던 것들을 현실화할 기회를 얻게 된다. 1억 예산이 주어지는,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규모의 사업이었으나 그를 비롯한 <있다> 청년들은 ‘쫄’기는커녕 신명 나게 일을 진행해갔다. 



“재밌는 걸 진짜 많이 했어요. 그림책도 만들고 동네밴드도 만들고, 또 마을 할머니들의 입말이 살아 있는 시로 달력도 만들었고요. 기존의 평생교육원이나 문화센터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그러면서도 주민들이 주인으로 참여하고 지역의 삶을 예술로 표현해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려 했죠. 그 성과를 인정받아서 연말에 우수사례로 뽑혀 본부에 올라가 발표도 했고요. 우리가 봐도 정말 너무 잘했거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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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의 <청년모임 있다>는 ‘2024년 예술로어울림’ 사업으로 모두 16개의 문화예술 소모임을 운영하여 그해 우수사례로 뽑혔다. 
사진은 당시 진행한 라자요가(위)와 우동밴드(아래).



열여섯 개의 다채로운 문화예술 소모임이 여기저기서 달그락거린 6개월 동안, 지역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찼고 참가자들의 얼굴엔 윤기가 돌았다. 기획자이자 실무자로 분주하게 움직인 한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작고 소외된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문화예술과 청년이 만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산청 같은 군 단위 지역에 대표적으로 부족한 게 청년과 문화예술이잖아요. 사실 청년이 지역에 돌아오고 정착하려면 문화예술은 반드시 활성화되어야 해요. 그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정체감이 문화예술로부터 오기 때문이죠. 여기서 문화예술은 재능의 영역만이 아닌, 오히려 지역 문화 전반을 폭넓게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예술로어울림을 끝낸 이후 작년에 시작해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는 ‘바이로컬(by local)’ 사업이 그 예로 적당할 것 같은데요, 역사가 오래된 <목화장터>를 자원순환이 가능한 친환경 장터로 변화시킨다든지, 어르신들과 함께 목공방을 하고 산청지역의 특성을 살린 생태관광 루트를 개발한다든지, 그런 일들을 지역 활동가와 청년들이 결합해 함께 진행하고 있어요.” 



이런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십 대 청년 중에는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이곳 산청에서 보낸 이들이 많다. 흔히들 시골에서 자란 청년은 도시를 동경하고 지역 밖으로 나가길 원한다고 여기지만 “그 또한 편견일 수 있다”는 것이 한나의 생각이다. 그가 느끼기엔 오히려 부모들이 도시를 동경하여 자식들을 내보내려 애쓴다. 심지어는 지역에 계속 남아 있거나 나갔다가 돌아오는 친구들을 실패자로 여기는 경향도 아주 없진 않다.



“청소년도 그렇고 청년도 그렇고, 적어도 제가 만난 친구들은 자기가 나고 자란 이곳을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그들이 여기 남아 뭔가를 할 수 있게, 아니면 나중에 더 많은 이들이 돌아올 수 있게 기반을 닦아주고 싶어요. 그게 이곳에 먼저 정착해 활동하는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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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한편에 자리 잡은 ‘자원순환부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목화장터>가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친환경 장터로 변화하고 있다.



지난여름, 그늘을 넓히고 언덕을 다진 시간 


예술로어울림 사업을 진행하던 중, <있다>가 주축이 되고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의료사협)> 어른들이 힘을 보태면서 <카페 남다른이유>가 여럿이 함께 책임지고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거듭난 것도 2024년에 일어난 중요한 변화라 할 만하다. 모임 장소로 유용하게 쓰이던 카페가 문 닫을 위기에 처하자 그곳을 사랑하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나서서 <그늘과언덕>이라는 임의단체를 설립하여 카페를 ‘접수’해버린 것이다. 


이듬해인 2025년 여름. 산청에 폭우가 쏟아지고 그로 인한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을 때도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지역에 이미 존재하는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었다. <있다> 회원 중 몇몇 청년의 농장이 침수되면서 다른 회원들이 일손을 보태기 위해 모인 것이 그 시작이었다고 한나는 기억한다. 아주 단순하게 “같이 밥 먹고 놀고 모임 하던 사람들이 곤경에 처했으니 돕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그러나 열 명 남짓한 인원이 매일 같이 뙤약볕 아래서 일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또 하루하루 지날수록 피해 영역과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다 보니 내 친구, 우리 회원만 돕고 끝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주먹구구식이 아닌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절실해 보이던 그때. 마침 <의료사협>에서 수해 관련 활동에 대한 제안이 들어와 한나는 덥석 그 일을 맡고 먼저 실태 조사에 나섰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생각했던 것보다도 피해가 정말 심각하더라고요. 지자체나 여러 기관이 열심히 복구 작업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했고, 특히 자원봉사 인력은 지역 내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어서 외부의 지원이 절실해 보였어요. 그래서 일단은 피해 농가와 자원봉사 인력을 잇기 위한 오픈채팅방을 열고 시민사회 네트워크를 통해 널리 알리는 작업을 했죠. 그 이후 채팅방은 수해를 입은 농민들이 봉사 인력을 요청하는 창구이자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자원봉사를 신청하는 통로가 되었어요. 저는 농가들의 요청을 정리해 날짜별로 어떤 일감이 있는지 올리고, 그걸 보고 내려오는 봉사자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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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봉사자들이 작업 중 잠깐 쉬는 모습. 산청이 작년 수해를 극복하기까지는 민간자원봉사를 이끈 지역 내 공동체조직과 활동가들의 역할이 컸다. 



<의료사협>과 더불어 수해복구 민간자원봉사의 중심이 된 <그늘과언덕>은 복구 작업에 직접 나서는 것 외에도 타지에서 온 봉사자들이 제대로 먹고 씻고 잘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했다. 다행히 회원들이 저마다 자신의 시간과 장소와 몸과 마음을 대가 없이 제공해주어 모든 게 큰 차질 없이 돌아갈 수 있었다. 허약해진 삶의 기반 위에서 알알이 반짝이는 기적들을 만들어낸 이 활동으로 <그늘과언덕>은 그해에 ‘제1회 대한민국 봉사와 나눔 우수사례 공모전 단체부문 대상’을 수상한다. 지난여름이 산청 주민들에게 단지 고통만이 아닌 일종의 사랑 혹은 희망을 전하는 한 점 불빛으로 기억되고 있다면, 아마도 그 이유는 서로 연루됨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곁을 내주고 품을 열어준 이들 때문이 아닐까.



“사실은 수해 전까지만 해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분들, 시민사회와 공동체에 관심을 보이는 귀촌 귀농자들 위주로 만나왔어요. 그런데 수해복구 활동을 하면서는 농부들과 이주노동자들처럼 전혀 다른 분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자주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다 보니까 내가 이분들과 소통하지 않거나 못할 이유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어려운 이들을 돌보는 게 지역공동체와 활동가들이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라는 것도 배웠고요.”



<그늘과언덕>이 올해 들어 시작한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 사업은 수해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얻은 깨달음에서 비롯한 것으로, 식생활이 취약한 1인 가구의 밥상을 챙기고 야간 및 주말에 공백이 생기기 쉬운 맞벌이 가정의 어린이를 돌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 한다. 누구라도 쉴 수 있는 그늘을 더 넓고 깊게, 아무나 기댈 수 있는 언덕을 더 탄탄하게 만들어가는 한나와 그 친구들의 노력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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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그늘과언덕>이 운영하는 ‘농촌주민생활돌봄공동체’ 지원사업 포스터.



나의 활동은 결국 나의 행복을 위한 것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이후로 그는 줄곧 바빴고 때론 정신없이 달렸다. 학교에 있을 때는 교사 일이 중심이고 나머지는 다 곁다리였던 데 반해, 활동가로 움직이고부터는 각각의 사업과 역할이 전부 중심이 되면서 생긴 결과다. 하지만 몸은 전보다 분주해도 마음은 어쩐지 한결 여유로워진 것을 느낀다. 이제 그는 오전 일정이 없는 날이면 느지막이 일어나 새들이 지절대는 마당에서 풀을 뽑고, 때로는 햇살 아래 근사한 점심상을 차린다. 일주일에 한 번은 <빈둥밴드> 친구들을 만나 건반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가끔은 상림이나 묵곡생태숲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버스킹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는 얼핏 평범해 보이나 과거엔 기대할 수 없었던 풍경들이다. 



“내 시간을 내가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고요, 무엇보다 일과 삶이 일치하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커요. 제가 하는 일들이 휘발되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쌓이고 두터워지는 느낌이랄까요. 저의 모든 행위가 제 삶의 아카이브로 남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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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묵곡생태숲에서 작은 공연 중인 <빈둥밴드>. 왼쪽에서 두 번째, 건반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이가 한나다.


 

제아무리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일지라도 내가 행복하지 않다면 그만둘 수 있어야 한다는 확고한 기준을 지닌 한나는, 그리하여 교사를 그만둘 때 그러했듯 지금도 시시때때로 거울 앞에 서서 묻곤 한다. “오늘이 생의 마지막 날이어도 당신은 그 일을 하겠습니까?” 지난 2년 3개월 동안 대답은 쭉 ‘예스’였고, 이 순간에도 역시 그러하다. 언젠가 그의 입에서 ‘노’라는 대답이 튀어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것대로 괜찮을 것이다. 그는 이미 행복해지기 위한 세 번째 삶 쪽으로 한 걸음 내딛는 중일 테니까. 더군다나 그의 행복은 여럿의 행복과 연결되고 그가 선택한 삶의 전환은 공동체의 좋은 변화로 이어질 게 분명하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가 어디로 향하고 무엇을 행하든 그저 응원하는 것뿐이리라.




인터뷰어 : 자야
함양에 산 지 17년째. 새벽 산책과 새 관찰, 지치지 않을 정도의 텃밭일, 읽고 쓰고 노래하는 것, 용기 있고 다정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는 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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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6년에는 〈활동가, 전환을 말하다〉를 주제로 기획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공익활동가가 되는 데 정해진 경로는 없습니다. 교사였던 사람, 광장에서 처음 마이크를 잡았던 사람, 기존 활동의 궤적 위에서 변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를 '전환'해 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공익활동'이 더 많은 사람의 선택지가 되길 바라며, 다채로운 전환의 이야기를 기록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지리산이음에서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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