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에 진심인 우리는 기어코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 여성환경연대 르다 활동가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세상. 수많은 플라스틱 문제 중에서 '생수(먹는샘물)' 문제에 주목한 여성환경연대는 수질과 유해물질,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넘어 기업의 수자원 독점, 식수 접근권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생수 산업의 이면을 파헤쳤다. 이 사업 과정에서 활동가와 시민으로서 플라스틱 없이 물 마실 권리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스쳐 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로 인연인가 싶을 정도로 여성환경연대 너머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아졌고 르다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피어올랐다. 얼굴을 익힌 세월에 비해 모르는 것투성이였던 르다에게 세 가지 키워드로 자기소개를 요청했다.

‘비건’, ‘씨네필’ 그리고 ‘숙고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2020년 5월부터 완전 ‘비건’을 하고 있고 이제 5년이 넘었네요. 단순히 제가 비건이라서 골랐다기보다는 채식을 하면서 이 운동이 훨씬 더 일상의 문제로 확 다가왔거든요. 왜냐면 매일매일 밥을 먹는데 먹는 순간마다 고민해야 하고, 뭘 먹을 수 있고 뭘 먹을 수 없는지 생각해야 하고, 누군가의 살을 인식하는 과정이 내 삶으로 확 달라붙는 계기가 됐어요. 제가 활동가가 된 것도 채식이 무척 큰 영향을 미쳤어요.
‘씨네필’은 제가 영화를 엄청나게 많이 봐요. 요즘은 바빠서 많이 못 보고 있지만 그래도 1년에 200여 편씩은 봐왔거든요. 영화는 단순히 취미의 영역은 아닌 듯해요. 영화는 제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과도 연관되고, 삶의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숙고하는 사람’은 상근 활동가이든 아니든 계속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가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활동가가 되지 않았더라도 계속해서 나는 고민할 것이고 그 언저리에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숙고하는 사람’을 떠올렸어요.

국제 플라스틱 협약 대응 활동(르다 제공)
Q. 우리를 연결해준 곳이자 르다의 일터인 여성환경연대는 어떤 곳인지, 르다는 어떤 활동을 맡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여성환경연대를 한 줄로 소개하자면 1999년에 창립한, 여성의 관점에서 생태적 대안을 찾는 여성 환경 단체입니다. 저는 단체 안에서 플라스틱 운동을 하고 있어요. 에코페미니즘과 여성환경연대의 맥락에서 국내 자원순환 정책 관련 대응을 하기도 하고, 작년에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대응 활동을 했었어요.
국내 환경 의제 중에서 플라스틱 생수 관련 대응을 하고 있는데 플라스틱 자원순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을 넘어 물을 기업이 사유화할 권리가 있는지, 물은 모두가 누려야 될 권리는 아닌지의 관점까지 확장되어 플라스틱 문제와 물 문제 사이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곧 만 3년 차 활동가를 앞두고 있습니다.
Q. 만 3년 차 여성환경연대 활동가가 인생의 첫 직업인가요?
직업으로는 그렇죠. 그전에도 일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정규직 근로자로서는 처음이에요. 이전에도 비영리 부문에 관심 많았는데 대학 시절에는 시민단체 관련된 정보를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취업 정보 센터를 가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관련한 인턴이나 계약직으로 경험을 많이 쌓아왔는데 돌고 돌아서 결국은 여기에 왔다는 감각이 있어요.
사실 고등학생 때부터 시민단체 활동가를 생각하고 장래 희망으로 NGO 활동가를 쓰기도 했어요. 오히려 대학에 가고 타지살이를 하다 보니까 내가 이 돈 받고 서울에서 살 수 있을까, 용기가 안 났어요. 그래도 신념을 버리고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분명하게 있었고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사회적 경제나 소셜 벤처가 아닐까 했어요. 그러다가 협동조합에서도 일해보고 여기저기서 일해보니까 내가 이렇게 투쟁하면서 일해야 할 거면 그냥 시민단체 가자, 차라리 환경단체에 가자, 이런 생각으로 지금 단체에 왔어요.
Q. 지금 속한 단체에서도 열심이지만 이 외의 영역에서도 쉴 틈 없이 활동하고 있잖아요.
환경 운동이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환경 운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제에 관심 있어요. 세상에 무수히 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좋은 환경책(‘올해의 환경책’ 선정위원회 활동/환경정의)과 좋은 기사(‘이달의 좋은 보도상’ 심사/민주언론시민연합)를 선정해서 세상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고요. 작년에는 환경 다큐멘터리 <폰의 심폐소생술>에 프로듀서로 참여해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어요. 또, 영화 글을 쓰려고 브런치와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고, 영화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답니다.
Q.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네요.
맞아요. 혼자 좋아하면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영화가 좋았다면 이 영화를 알려야 영화가 잘 되고 그래야 그 비슷한 영화가 또 나올 거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을 더 끌고 가서 같이 읽고, 보고 들으려고 합니다.
Q. 최근에 새롭게 관심 가지게 된 분야가 있나요?
아주 최근에는 문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사실 사회과학 도서를 많이 읽는 편이라 문학을 많이 읽진 않았거든요. 얼마 전에 한량도 왔었던 나희덕 선생님 『시와 물질』 북 토크 덕분에 시집을 읽으면서 문학의 힘을 느꼈거든요.
왜냐하면 영화도 사회에 대한 관점과 이야기들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켜 이야기할 것인가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데, 같은 맥락에서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문학이 너무 강렬했고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조금 더 직설적이지 않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하게 되고, 문학 작품을 더 자주 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Q. 결국은 세상과 사회에 연결되는 무언가에 또 빠진 거네요. 그래도 관심사가 업이 되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 않을까 하는데, 활동가로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출발점은 어디였을까요?
제가 2019년도에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교환 학생을 갔었어요. 그때 마침 그레타 턴베리가 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행진(Skolstrejk för klimatet)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기억이 엄청 강렬했어요. 그 당시에는 환경 문제를 중요하다고 생각만 했는데 교환 학생 사회에서 이 행진은 당연히 가야 하는 행진인거예요. 그래서 다 같이 갔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거기 다 모여 있더라고요.
원래 스톡홀름은 수도인데도 불구하고 인구 밀도가 굉장히 낮아서 길거리에 사람이 없거든요. 행진에서 빽빽한 인구 밀도를 처음 느껴봐서 놀랐고, 또 스웨덴어가 아니라 영문 구호 ”There is No Planet B”를 외치는 거예요. 게다가 요즘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종이상자 재활용 피켓이 엄청 많고 유아차와 함께 나온 여성, 휠체어를 타고 나온 사람, 아이, 청소년 등등 진짜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변화를 촉구하는 걸 보면서 환경 문제가 내 일상에 정말 맞닿아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는 걸 크게 체감했어요. 그러고 한국에 돌아와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채식이 동물권부터 환경 문제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세상과 자본주의를 하나씩 깨달으면서 결국 해답은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실 다른 환경단체를 고려할 수도 있었는데 여성의 관점에서 활동하는 게 무척 중요했고, 오랫동안 후원회원으로 지지했던 여성환경연대에서 때마침 활동가를 모집한 덕분에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Q. 저도 여성환경연대 회원으로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있는데 메일 제일 아래에 구성원 활동명이 나오잖아요. 오랫동안 구성원이 바뀌지 않고 함께 하는 걸 보면 굉장히 매력적이면서도 어떻게 이 활동가들이 퇴사하지 않고 같이 오래 일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맞아요. 정말 슬프게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고민도 많고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도 많이 하는데 저는 이 단체의 비전을 믿거든요. 이렇게 비전을 믿는 단체에서 일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죠. 다들 에코페미니즘이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같이 오래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그런데도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어려운 점은 많죠. 단체의 인지도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 회원 수가 적어요. 아주 소박한 회원 수로 인해 항상 재정이 어려워요. 사실 재정이 어려운 건 모든 시민단체의 필연적인 숙명이겠지만 단체의 재정 상황으로 인해 활동에 영향을 받고 방향성을 숙고해야 할 때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항상 시간이 부족한 편이에요. 어떤 맥락이냐면 우리 단체는 에코페미니즘이라는 담론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끊임없이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하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거든요. 게다가 활동가 개인이 담론 공부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활동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거기다 기획에서 실행, 홍보, 디자인, 회계까지 모든 실무를 전부 다 하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기는 편이에요.
혼자서 A부터 Z까지 모두 다 진행하면서 이 활동이 어떻게 우리 단체의 맥락과 맞닿아 있고 에코페미니즘과 맞닿아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서 뇌를 풀가동하는 느낌이에요. 언제나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고, 그럼에도 더 많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과 반성도 하고 있어요.

<나는 쓰레기 없이 물 마신다> 집담회 현장(르다 제공)
Q. 바깥에서 볼 땐 몰랐는데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네요.
동전의 양면이라고 보는데 다른 단체들보다 우리 단체는 활동가의 자율성이 엄청 높다고 생각해요. 단체 활동이 에코페미니즘과 맞닿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활동가의 부담이자 책임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활동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스스로가 바르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고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 어떤 단체에서는 오랫동안 매년 진행하던 사업을 꾸준히 해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우리 단체는 조금 더 열려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의제를 발굴해 새로운 활동을 꾸릴 수 있어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거죠.
Q. 그렇다면 단체에서 활동을 지속해나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뭘까요?
먼저 이야기했던 것과 겹칠 수 있는데 에코페미니즘이 미래라는 확신이 일을 지속해나가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해요. 이 길이 맞는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이 방향을 향해 쭉 가면 되고, 사람들이 체감하기에 아직 부족하다면 오히려 내가 할 일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잖아요. 일종의 효용을 주기도 해요.
Q. 자부심이 느껴지고 정말 좋은데요. 활동해나가면서 달라진 감각이 있을까요?
단체에 들어오기 전에 제 앞에 길이 엄청 많았거든요. 진로도 그렇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환경단체를 선택한 건 기후위기가 전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당장 코로나 시절만 하더라도 일상이 마비되고, 폭우 때문에 사람이 죽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환경뿐이더라고요. 환경 운동을 해야만 한다는 강렬한 감각이 있었고 이와 동시에 기후 우울도 상당했어요. 당장 5년 뒤, 10년 뒤에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는 거예요. 죽는다는 것보다는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감각이 강렬했었어요. 오히려 단체에 와서 활동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니까 기후 우울함이 해소되더라고요.
또 단체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유별나고 특이한 사람이었는데 단체에는 저 같은 사람밖에 없더라고요. 마음 맞는 동료들 사이에서 내가 특이한 게 아니었고,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감각이 가장 좋았어요.
Q. 활동 영역을 넘어 삶에 대한 감각까지도 연결되는 게 인상 깊어요. 혹시 개인의 삶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런데 사실 작년에 고민이 많았어요. 오히려 활동가로서, 개인으로서 성과는 많았는데 심적으로 힘들더라고요.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내달리는 느낌이랄까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흐릿한 채로 계속 질주하는 느낌인 거예요. 그래서 연말에 한 해를 촘촘하게 회고하면서 어떤 게 문제였고 어떻게 이 문제를 개선해야 활동가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선명하게 감각하고,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하게 활동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열심히 운동하면서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어요. 내 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도 무척이나 흥미롭고, 근육 늘리고 근력 키우는 재미도 알아가고 있어요.

비건페스티벌 <플라스틱 없이, 물만 먹고가지요> 현장(르다 제공)
Q. 고민하고 활동하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요?
활동가일수록 오히려 더 어려운 게 뭐냐면 우리가 하는 활동은 변화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당장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해서 지금 바로 통과시키겠다라고 단언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아요. 어떤 목표를 단기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 대신에 세상에 대한 꿈을 꿀 수는 있겠죠. 이를테면 누구와도 안전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꿈이요.
Q. 저도 거기 데려다주세요. (웃음)
그러니까요. 최근 안타까운 게 특히나 또래 중심으로 성별에 따라 분리되고 관계망이 멀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저는 사람 좋아하고 친구가 되길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제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없겠다는 느낌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최소한의 원칙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다른 활동가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을까요?
활동가들은 모두 마음 한켠에 반짝이는 어떤 것들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분야 상관없이 모든 활동가에게 너무 아프지 않게 활동했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활동하다 보면 지치는 일 너무 많고, 화나는 일 너무 많잖아요. 세상뿐만 아니라 일에서 생기는 고민, 조직에서 생기는 고민도 많을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내가 진심이기 때문에 고민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스스로 지키면서 소진되지 않고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어 : 한량(오민진)
좋아하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건 더 많은 일상수집가이자 부지런히 세상을 누비는 한량. 덕분에 일상이 자주 반짝였으며, 이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내 삶을 넘어 다른 이들의 삶도 수집하며,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환경에 진심인 우리는 기어코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 여성환경연대 르다 활동가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세상. 수많은 플라스틱 문제 중에서 '생수(먹는샘물)' 문제에 주목한 여성환경연대는 수질과 유해물질,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넘어 기업의 수자원 독점, 식수 접근권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생수 산업의 이면을 파헤쳤다. 이 사업 과정에서 활동가와 시민으로서 플라스틱 없이 물 마실 권리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스쳐 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로 인연인가 싶을 정도로 여성환경연대 너머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아졌고 르다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피어올랐다. 얼굴을 익힌 세월에 비해 모르는 것투성이였던 르다에게 세 가지 키워드로 자기소개를 요청했다.
‘비건’, ‘씨네필’ 그리고 ‘숙고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2020년 5월부터 완전 ‘비건’을 하고 있고 이제 5년이 넘었네요. 단순히 제가 비건이라서 골랐다기보다는 채식을 하면서 이 운동이 훨씬 더 일상의 문제로 확 다가왔거든요. 왜냐면 매일매일 밥을 먹는데 먹는 순간마다 고민해야 하고, 뭘 먹을 수 있고 뭘 먹을 수 없는지 생각해야 하고, 누군가의 살을 인식하는 과정이 내 삶으로 확 달라붙는 계기가 됐어요. 제가 활동가가 된 것도 채식이 무척 큰 영향을 미쳤어요.
‘씨네필’은 제가 영화를 엄청나게 많이 봐요. 요즘은 바빠서 많이 못 보고 있지만 그래도 1년에 200여 편씩은 봐왔거든요. 영화는 단순히 취미의 영역은 아닌 듯해요. 영화는 제가 세상을 배우는 방식과도 연관되고, 삶의 원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숙고하는 사람’은 상근 활동가이든 아니든 계속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가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활동가가 되지 않았더라도 계속해서 나는 고민할 것이고 그 언저리에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 ‘숙고하는 사람’을 떠올렸어요.
국제 플라스틱 협약 대응 활동(르다 제공)
Q. 우리를 연결해준 곳이자 르다의 일터인 여성환경연대는 어떤 곳인지, 르다는 어떤 활동을 맡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여성환경연대를 한 줄로 소개하자면 1999년에 창립한, 여성의 관점에서 생태적 대안을 찾는 여성 환경 단체입니다. 저는 단체 안에서 플라스틱 운동을 하고 있어요. 에코페미니즘과 여성환경연대의 맥락에서 국내 자원순환 정책 관련 대응을 하기도 하고, 작년에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 대응 활동을 했었어요.
국내 환경 의제 중에서 플라스틱 생수 관련 대응을 하고 있는데 플라스틱 자원순환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을 넘어 물을 기업이 사유화할 권리가 있는지, 물은 모두가 누려야 될 권리는 아닌지의 관점까지 확장되어 플라스틱 문제와 물 문제 사이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곧 만 3년 차 활동가를 앞두고 있습니다.
Q. 만 3년 차 여성환경연대 활동가가 인생의 첫 직업인가요?
직업으로는 그렇죠. 그전에도 일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정규직 근로자로서는 처음이에요. 이전에도 비영리 부문에 관심 많았는데 대학 시절에는 시민단체 관련된 정보를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취업 정보 센터를 가도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관련한 인턴이나 계약직으로 경험을 많이 쌓아왔는데 돌고 돌아서 결국은 여기에 왔다는 감각이 있어요.
사실 고등학생 때부터 시민단체 활동가를 생각하고 장래 희망으로 NGO 활동가를 쓰기도 했어요. 오히려 대학에 가고 타지살이를 하다 보니까 내가 이 돈 받고 서울에서 살 수 있을까, 용기가 안 났어요. 그래도 신념을 버리고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분명하게 있었고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 사회적 경제나 소셜 벤처가 아닐까 했어요. 그러다가 협동조합에서도 일해보고 여기저기서 일해보니까 내가 이렇게 투쟁하면서 일해야 할 거면 그냥 시민단체 가자, 차라리 환경단체에 가자, 이런 생각으로 지금 단체에 왔어요.
Q. 지금 속한 단체에서도 열심이지만 이 외의 영역에서도 쉴 틈 없이 활동하고 있잖아요.
환경 운동이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요. 환경 운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제에 관심 있어요. 세상에 무수히 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좋은 환경책(‘올해의 환경책’ 선정위원회 활동/환경정의)과 좋은 기사(‘이달의 좋은 보도상’ 심사/민주언론시민연합)를 선정해서 세상에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고요. 작년에는 환경 다큐멘터리 <폰의 심폐소생술>에 프로듀서로 참여해 올해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어요. 또, 영화 글을 쓰려고 브런치와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고, 영화 팟캐스트도 진행하고 있답니다.
Q. 좋아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네요.
맞아요. 혼자 좋아하면 지속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영화가 좋았다면 이 영화를 알려야 영화가 잘 되고 그래야 그 비슷한 영화가 또 나올 거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을 더 끌고 가서 같이 읽고, 보고 들으려고 합니다.
Q. 최근에 새롭게 관심 가지게 된 분야가 있나요?
아주 최근에는 문학에 관심이 생겼어요. 사실 사회과학 도서를 많이 읽는 편이라 문학을 많이 읽진 않았거든요. 얼마 전에 한량도 왔었던 나희덕 선생님 『시와 물질』 북 토크 덕분에 시집을 읽으면서 문학의 힘을 느꼈거든요.
왜냐하면 영화도 사회에 대한 관점과 이야기들을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켜 이야기할 것인가 이런 이유로 좋아하는데, 같은 맥락에서 사회에 관해 이야기하는 문학이 너무 강렬했고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우리가 조금 더 직설적이지 않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세상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하게 되고, 문학 작품을 더 자주 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Q. 결국은 세상과 사회에 연결되는 무언가에 또 빠진 거네요. 그래도 관심사가 업이 되는 건 또 다른 문제이지 않을까 하는데, 활동가로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던 출발점은 어디였을까요?
제가 2019년도에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교환 학생을 갔었어요. 그때 마침 그레타 턴베리가 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 행진(Skolstrejk för klimatet)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 기억이 엄청 강렬했어요. 그 당시에는 환경 문제를 중요하다고 생각만 했는데 교환 학생 사회에서 이 행진은 당연히 가야 하는 행진인거예요. 그래서 다 같이 갔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거기 다 모여 있더라고요.
원래 스톡홀름은 수도인데도 불구하고 인구 밀도가 굉장히 낮아서 길거리에 사람이 없거든요. 행진에서 빽빽한 인구 밀도를 처음 느껴봐서 놀랐고, 또 스웨덴어가 아니라 영문 구호 ”There is No Planet B”를 외치는 거예요. 게다가 요즘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종이상자 재활용 피켓이 엄청 많고 유아차와 함께 나온 여성, 휠체어를 타고 나온 사람, 아이, 청소년 등등 진짜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에서 변화를 촉구하는 걸 보면서 환경 문제가 내 일상에 정말 맞닿아 있는 중요한 문제였다는 걸 크게 체감했어요. 그러고 한국에 돌아와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채식이 동물권부터 환경 문제로 연결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몰랐던 세상과 자본주의를 하나씩 깨달으면서 결국 해답은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실 다른 환경단체를 고려할 수도 있었는데 여성의 관점에서 활동하는 게 무척 중요했고, 오랫동안 후원회원으로 지지했던 여성환경연대에서 때마침 활동가를 모집한 덕분에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Q. 저도 여성환경연대 회원으로 뉴스레터를 받아보고 있는데 메일 제일 아래에 구성원 활동명이 나오잖아요. 오랫동안 구성원이 바뀌지 않고 함께 하는 걸 보면 굉장히 매력적이면서도 어떻게 이 활동가들이 퇴사하지 않고 같이 오래 일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맞아요. 정말 슬프게도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고민도 많고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도 많이 하는데 저는 이 단체의 비전을 믿거든요. 이렇게 비전을 믿는 단체에서 일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하죠. 다들 에코페미니즘이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같이 오래 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Q. 그런데도 일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어려운 점은 많죠. 단체의 인지도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에 비해 회원 수가 적어요. 아주 소박한 회원 수로 인해 항상 재정이 어려워요. 사실 재정이 어려운 건 모든 시민단체의 필연적인 숙명이겠지만 단체의 재정 상황으로 인해 활동에 영향을 받고 방향성을 숙고해야 할 때 고민이 많습니다.
그리고 항상 시간이 부족한 편이에요. 어떤 맥락이냐면 우리 단체는 에코페미니즘이라는 담론을 바탕으로 하다 보니 끊임없이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하고 부지런히 공부해야 하거든요. 게다가 활동가 개인이 담론 공부만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활동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거기다 기획에서 실행, 홍보, 디자인, 회계까지 모든 실무를 전부 다 하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기는 편이에요.
혼자서 A부터 Z까지 모두 다 진행하면서 이 활동이 어떻게 우리 단체의 맥락과 맞닿아 있고 에코페미니즘과 맞닿아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서 뇌를 풀가동하는 느낌이에요. 언제나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고, 그럼에도 더 많이 고민해야겠다는 생각과 반성도 하고 있어요.
<나는 쓰레기 없이 물 마신다> 집담회 현장(르다 제공)
Q. 바깥에서 볼 땐 몰랐는데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업무를 하고 있네요.
동전의 양면이라고 보는데 다른 단체들보다 우리 단체는 활동가의 자율성이 엄청 높다고 생각해요. 단체 활동이 에코페미니즘과 맞닿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 활동가의 부담이자 책임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활동 방향이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스스로가 바르다고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고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을 거예요. 어떤 단체에서는 오랫동안 매년 진행하던 사업을 꾸준히 해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우리 단체는 조금 더 열려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의제를 발굴해 새로운 활동을 꾸릴 수 있어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거죠.
Q. 그렇다면 단체에서 활동을 지속해나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뭘까요?
먼저 이야기했던 것과 겹칠 수 있는데 에코페미니즘이 미래라는 확신이 일을 지속해나가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해요. 이 길이 맞는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이 방향을 향해 쭉 가면 되고, 사람들이 체감하기에 아직 부족하다면 오히려 내가 할 일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잖아요. 일종의 효용을 주기도 해요.
Q. 자부심이 느껴지고 정말 좋은데요. 활동해나가면서 달라진 감각이 있을까요?
단체에 들어오기 전에 제 앞에 길이 엄청 많았거든요. 진로도 그렇고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환경단체를 선택한 건 기후위기가 전부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당장 코로나 시절만 하더라도 일상이 마비되고, 폭우 때문에 사람이 죽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환경뿐이더라고요. 환경 운동을 해야만 한다는 강렬한 감각이 있었고 이와 동시에 기후 우울도 상당했어요. 당장 5년 뒤, 10년 뒤에 내가 살아 있을지 모르겠는 거예요. 죽는다는 것보다는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감각이 강렬했었어요. 오히려 단체에 와서 활동하면서 하고 싶은 말을 하니까 기후 우울함이 해소되더라고요.
또 단체에 들어오기 전에는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유별나고 특이한 사람이었는데 단체에는 저 같은 사람밖에 없더라고요. 마음 맞는 동료들 사이에서 내가 특이한 게 아니었고, 이렇게 살아도 된다는 감각이 가장 좋았어요.
Q. 활동 영역을 넘어 삶에 대한 감각까지도 연결되는 게 인상 깊어요. 혹시 개인의 삶에서 고민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런데 사실 작년에 고민이 많았어요. 오히려 활동가로서, 개인으로서 성과는 많았는데 심적으로 힘들더라고요. 땅에 발을 딛지 않고 내달리는 느낌이랄까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흐릿한 채로 계속 질주하는 느낌인 거예요. 그래서 연말에 한 해를 촘촘하게 회고하면서 어떤 게 문제였고 어떻게 이 문제를 개선해야 활동가로서 지속 가능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선명하게 감각하고,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하게 활동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열심히 운동하면서 땅에 발을 딛고 있다는 감각을 느끼고 있어요. 내 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도 무척이나 흥미롭고, 근육 늘리고 근력 키우는 재미도 알아가고 있어요.
비건페스티벌 <플라스틱 없이, 물만 먹고가지요> 현장(르다 제공)
Q. 고민하고 활동하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까요?
활동가일수록 오히려 더 어려운 게 뭐냐면 우리가 하는 활동은 변화가 그렇게 쉽게 오지 않잖아요. 그러다 보니 당장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해서 지금 바로 통과시키겠다라고 단언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아요. 어떤 목표를 단기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어려울 수 있지만, 대신에 세상에 대한 꿈을 꿀 수는 있겠죠. 이를테면 누구와도 안전하게 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꿈이요.
Q. 저도 거기 데려다주세요. (웃음)
그러니까요. 최근 안타까운 게 특히나 또래 중심으로 성별에 따라 분리되고 관계망이 멀어지는 느낌이 있거든요. 저는 사람 좋아하고 친구가 되길 좋아하는 사람인데, 이제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없겠다는 느낌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과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요. 스스로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최소한의 원칙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다른 활동가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가 있을까요?
활동가들은 모두 마음 한켠에 반짝이는 어떤 것들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분야 상관없이 모든 활동가에게 너무 아프지 않게 활동했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활동하다 보면 지치는 일 너무 많고, 화나는 일 너무 많잖아요. 세상뿐만 아니라 일에서 생기는 고민, 조직에서 생기는 고민도 많을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내가 진심이기 때문에 고민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자신이 제일 소중하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스스로 지키면서 소진되지 않고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