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저마다의 아픔들과 연대해서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 - 돌봄 청년 커뮤니티 N인분 오현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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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아픔들과 연대해서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

 - 돌봄 청년 커뮤니티 N인분 오현아 활동가


Q.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마음의 병이 있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곁에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을 항상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 방법으로 두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요. 미술 치료사로서 예술로 보이지 않는 마음을 같이 돌보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돌봄 경험을 바탕으로 영케어러 당사자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Q. 활동하고 계신 단체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돌봄 청년 커뮤니티 N인분입니다. 자조 모임으로 시작해서 비영리 단체로 등록이 되어 있고 지금은 법인화 과정 중에 있습니다. 장애 혹은 질병, 고령 등 다양한 이유로 돌봄이 필요한 누군가를 돌봄했거나 하고 있는 청년들이 모여 있는 단체예요. 당사자, 연구자, 지원활동가 등 다양한 배경의 분들이 함께 해오고 계세요. 

‘N인분’이라는 단체명을 궁금해하기도 하는데요. 돌봄 부담을 홀로 지지 말고 나누자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돌봄 경험을 가지고 있는 아동, 청(소)년들이 1인분의 삶이 아닌 n인분의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모두가 돌봄해도 괜찮고, 돌보고 싶은 돌봄 안전망을 만들자는 비전을 가지고 여러 활동들을 해오고 있는데요.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을 누군가는 겪지 않았으면, 겪더라도 조금은 덜 힘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뜻을 모아 오고 있어요.


Q. 최근에 단체명이 소문자 ‘n’에서 대문자 ‘N’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는데요.

(조기현) 지금까지는 돌봄청년커뮤니티 n인분으로 활동했습니다. 단체의 초기 목적은 돌봄 청년을 법적 용어로 만드는 거였는데요. <가족돌봄등위기아동‧청년지원에관한법률>이 제정되면서 돌봄 청년이라는 말이 법제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케어러에 대한 지원이 늘어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많지 않더라고요. 

장기요양 등의 통합 돌봄 서비스가 늘어나야 하는 시대적 환경에서 우리의 활동을 돌봄 청년에 국한하지 말고 돌봄 운동을 같이 할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되자는 지향으로 이름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보통 소문자는 개별성, 소수자성을 강조하는 반면 대문자는 보편적인 역사를 이야기할 때 주로 쓰이거든요. 우리도 대문자 N인분으로 전환하면서 모두를 위한 돌봄 안전망이라는 지향점을 명확히 하고자 했습니다.


Q. 단체 활동과 돌봄을 병행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요. 그럼에도 활동을 이어나가시는 건 활동가님에게 활동이 가지는 의미가 있기 때문일 듯 합니다. N인분에서 활동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와 활동이 가지는 의미가 궁금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겪었던 일들을 돌봄이라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돌봄으로 인한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삶에 주어졌고, 질병을 질병으로 보지 못하는 사회이다보니 제 경험을 말하기도 어려웠어요. 그러다보니 그 경험을 소화하기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당시를 떠올려 보면, 언제 삼켜질지 모르는 파도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았어요. 예측하기 어렵고, 어떻게 해야할 지 막막했던 기억이 나요. 어렸을 때는 왜 우리집만 이러지? 하고 생각했는데요. 가족의 감정선을 보면서 자라다보니 마음이 아픈 친구의 마음이 보이고, 또 다른 사람의 아픔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다행히 친구의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었고, 자살 현장을 세 번 정도 목격하기도 했어요. 

그런 경험을 마주하면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나만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었구나, 저마다의 아픔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가 잘 먹고 잘 살게 됐다고 하는데 여전히 마음이 아픈 분들이 많고, 편견과 수치심 때문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게 여전히 쉽지 않다는 점이 마음이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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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돌봄의 시작, 돌봄의 상호성


그래서 더 함께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들이 커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엔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몰라 진로 방황을 오래하기도 했는데요. 그저 저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조금씩 해보자 마음 먹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입원으로 가족이 안계실때면 성당 공동체의 돌봄을 받으며 자랄 수 있었는데요. 그러다 보니 진로를 찾으면서 수녀원을 다니기도 했어요. 수녀님께서 제가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지 조언을 주셨고, 답답한 마음을 그림으로 풀곤 했던 저는 미술학원을 무작정 가보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우연히 미술로 사람의 마음을 돌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미술치료와 상담심리 분야를 전공하게 됐어요.

이 분야에서 공부를 해 오다 보니 저와 비슷한 상황에서 자라고 있을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하게 됐어요. 그 시기쯤 영케어러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제 경험이 돌봄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그리고 동료를 찾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때 n인분을 만나서 자조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우리의 경험을 말해도 된다는 것,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렇게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각자의 위치에서 동행한다는 느낌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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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돌봄의 시작, 돌봄의 상호성. 아이가 함께 다녀오라며 준 토끼 인형


그리고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도 했는데요. 육아를 통해 새로운 돌봄을 마주하고 있어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어린 시절의 저를 만나기도 하고, 잊고 있던 어머니의 손길을 떠올리기도 해요. 돌봄이 일방향이 아닌, 서로를 돌보는 상호적인 일이라는 걸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배워가고 있어요. 오늘 엄마 일하러 간다고 하니까, 힘내라고 하면서 자신이 아끼는 토끼 인형을 들고 가라고 줬어요.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엄마인 저를 돌보고 있는 거죠. 이런 점에서 돌봄은 상호성을 기반으로 하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제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기 쉽지 않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대에서는 질병이 있어도, 장애가 있어도 괜찮은 사회.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저의 목소리 뒤에 있을 아이들을 기억하면 힘이 나요.


Q. ‘영영케어’는 돌봄 청년과 돌봄 청소년이 서로를 지지하며 성장하는 관계망인데요. 당사자가 다른 당사자를 지원하는 거잖아요. 전문성에 의문을 갖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동시에 영영 케어에서 어떤 시너지와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치료사로서도 공부를 하고 있고 당사자로서도 정체성이 있는데, 치료사가 할 수 있는 것과 당사자가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당사자가 전문가인 영역이 분명 있어요. 모두를 위한 안전한 구조를 만드는 것은 필요하겠지만요. 

예를 들어 자조모임에서 마치 내 이야기 같고 공감이 되다보니까 섣부른 조언을 할 수도 있는데요. 이런 것들을 조심하고, 영 케어러라는 공통분모로 모였지만 우린 모두가 다른 존재들이고,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는 만남이 가능해진다면 치유적인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멘토링을 하면서는 멘티가 제가 자조 모임 때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돌봄을 하다보면 항상 자신이 후순위로 밀리는 경험을 하게 되거든요. 상대의 필요와 욕구에 중점을 두게 되니까 내가 없어지는 거에요. 그러다보면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 수 없게 되는데요. 제가 진로 문제로 긴 시간 방황했던 것처럼요. 그런데 멘토링을 받는 친구가 작은 것들을 하나씩 시도해보기 시작했어요. 어딘가를 가보고 싶다고 하거나, 원하는 것들을 말하게 되는 것요.


Q. 그런 변화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나요?

멘토링을 하던 당시에 하나씩 시도를 했었고요. 최근에는 진로도 바꿨다고 연락이 왔어요. 거의 1년이 지난 셈이죠. 이럴 때 활동하는 보람이 느껴져요. 감동적이기도 하고, 뭉클했어요. 그래서 영영케어나 아이들을 지원하는 일이 씨앗을 심는 일 같아요. 그게 언제 발아될지는 모르지요. 생각해보면 저도 공적인 지원은 받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에 제게 씨앗을 심어주신 어른들 덕분에 지금이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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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심는 일, ‘미술로 마음돌봄’ 자조모임 진행 사진


Q. 재밌는 표현이네요. 씨앗을 심는다. 언제 자랄지, 싹을 틔울지 알 수 없는 상태로 씨앗을 심는거니까요.

맞아요. 그런데 거름은 다른 사람들도 같이 줄 수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리가 모든 걸 다 해주지 못해도 다음 사람이 또 쌓을 거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벽돌 하나만 쌓으면 된다는 말이었어요. 누군가 씨앗을 하나 심고, 다른 사람이 물을 주고, 또 다른 사람이 거름을 주고 할테니까요.


Q. 내가 모든 걸 다 완벽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네. 할 수도 없고요. 그 사람의 가능성을 믿는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사람마다 나의 씨앗이 있고 언젠가 싹을 틔울 거라는 것을요. 그 믿음을 가지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싹을 틔우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그 자체로도 귀하니까요. 내 씨앗은 어떤 모양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지, 내 씨앗의 모양을 찾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고 너무 소중한 거죠.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이요. 멘토링을 하며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저도 제 씨앗을 발견해 가는 것 같아요.


Q. 활동을 하시다보면 제도적 지원의 한계를 느끼실 텐데요. 보완의 필요성을 느끼는 지점들이 있으실까요? 

지원 현장에 있다보면 영 케어러 발굴이 어렵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그런데 아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이 부분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수 있어요. 저 또한 그랬고요.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가족의 아픔이 드러났을 때 불이익을 받을까 봐 자신이 힘든 걸 감수하면서도 가족을 지키고 있는 일일 수 있어요. 그래서 좋은 지원책이 만들어져도 문화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도움에 손을 뻗기에 어렵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돌봄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해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돌봄을 받는 시기가 있고, 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이요. 

그래서 시기와 형태는 다를 수 있겠지만 특정 누군가만이 겪는 일이 아닌, 누구나 살아가며 보편적으로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해요. 요즘 사회면 기사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을 들으면 마음이 아파요.

아이들이 사는 곳으로 놀림거리가 되고, 수저계급론까지 나오는 상황인데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말하기 어려운 건 너무나도 당연해요. 그 누구의 잘못도, 선택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당사자의 시선으로 보면 아이들 발굴이 어려운 건 너무나 당연해요.


Q. 지원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씀이네요.

그렇죠. 지원을 못하는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저 또한 제 돌봄 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여전히 쉽지 않지만 지금은 제 뒤에 아이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어느 정도 그 경험을 소화한 어른들이 목소리를 내야 문화가 바뀔 수 있다고 느껴서 조금씩 낼 수 있는 만큼의 목소리를 내어 가고 있어요. 

아이들하고 자조 모임을 진행해 본 적이 있는데요. 이 일로 아이들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이제 친밀감을 형성해 가고 있는 단계인데 단 회기 내에 돌봄 경험에 대해 나누려니, 청년 자조 모임보다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더라구요. 저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니 당연했어요. 그래서 충분한 관계 형성이 필요하고, 말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걸, 그 경험을 통해 배웠어요. 그리고 상황을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내 이야기를 들어줄 믿을만한 어른 한 명, 친밀한 관계 속에서 나 혼자만 겪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그런 감각들이 아이들에게 필요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지원에 있어서 이런 생애주기에 따른 접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영케어러가 연령을 보면 아동, 청소년, 청년까지 여러 생애주기를 담고 있고, 시기마다 느끼는 어려움이 다르니까요. 그리고 돌봄 단계에 있어서도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는데요. 이제 돌봄을 마주한 진입기, 수행기, 완료기 등 돌봄의 단계마다 다른 필요들이 있음을 느끼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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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극 사이에서 나의 중심, 안전지대, 초록을 지어가는 이야기


Q. 오 활동가님께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 그리고 적응력이 개인과 조직의 소중한 자원’이라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는데요. 저도 활동을 하면서 ‘그 무엇도 계획대로 되지 않고, 늘어나는 건 임기응변 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돌봄의 특징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맞아요. 저는 계획형이거든요. 하지만 돌봄 상황은 예측 불가능해서 아무리 준비를 해도 변수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많이 힘들지만 지속 가능한 돌봄을 위해서는 조금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고 계신 것일텐데, 제가 살리고 싶은 마음만 앞섰던 것은 아닐까 최근에 깨닫고 있어요. 그걸 내려놓기까지는 마음이 아팠죠.


Q.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맞아요. 죄책감도 들고요. 물에 빠지고 있는 사람을 구하지 않는 느낌이 들고요. 근데 그게 또 오만일 수도 있더라고요. 내가 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오만이요. 그래서 요즘에는 돕는 입장만이 아니라 당사자가 일어서려고 할 때 지지하는 사람, 옹호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어요. 돌봄이 어려서부터 오랜 시간 이어져 오다보니, 번아웃을 경험하기도 하는데요. 요즘에는 소진 신호를 알아차리기 위해서 제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있어요. 노트 쓰기, 그림 그리기, 사람들과의 대화가 저를 거울처럼 비춰서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Q. 요즘에는 하루에 그림을 몇 시간 정도 그리시나요?

시간을 정해놓고 그리는 편은 아니예요. 나도 돌봐야지 하고 생각을 하다보면, 자기돌봄도 뭔가 의무처럼 느껴지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가끔은 손에다 그림을 그려요. 이렇게 손바닥 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도 그림이거든요. 마음이 가빠질 때, 다듬기에 좋은 것 같아요. 불안할 때 동그라미만 그려도 내 호흡이 보여요. 긴장되고 불안하면 빨리 그리게 되고요. 그렇게 알아차리면 조금 천천히 숨 쉬면서 그릴 수 있게 되고요. 그림이라는 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냥 이렇게 표현해보는 걸로도 충분한 것 같아요.


Q. 그림의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네, 그런 점에서 미술치료랑 미술교육의 접근법이 조금 달라요. 미술치료로 보면 그릴 때 어떤 색을 골랐다면 그 물감이 왜 끌리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에 대한 이해를 해볼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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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걸어가는 길


Q. 작년 12월 초, <연결의 밀도:모임-커뮤니티-컴퍼니>에서 오 활동가님을 처음 뵀는데요. 당시 ‘끝이 없는 길을 홀로 걷고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주셨습니다. 돌봄은 끝이 정해져 있지 않기에 더 힘든 것 같은데요. 자조 모임을 운영하는 것도 이러한 어려움을 공유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자조 모임에서는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시는지 궁금합니다.

N인분은 ‘영영케어’라는 동료상담을 지원하고 있어요. 저는 1기 참여자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필요한 곳들에서 자조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저의 자조모임 참여 경험부터 말씀을 드리자면, 우선 경험들을 온전히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있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거든요. 계속 돌봄을 해야만 할 것 같고요. 

하지만 여기서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니까 그것 자체가 치유적이었어요. 그리고 돌봄 안에는 다양한 질병과 장애가 있거든요.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하신 분들과는 직접적인 정보를 교류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어요. 이전까지는 혼자 끝없는 길을 걷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각자의 길에서 걷고 있는 사람을 마주하게 된 느낌이랄까요. 오래 걸었으니 신발 한 번 갈아신자고 이야기하고, 멀리 왔다고 격려하기도 하면서요.


Q. 저는 돌봄을 주고받는 사람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거나 받거나 하는 관계는 아니라고 보는데요. 돌봄과 연관된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돌봄을 전적으로 받거나 주기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서로 돌보면서 살고 있는 거죠. 저의 영케어러 경험 그리고 육아 경험은 돌봄은 상호적일 수밖에 없고, 돌봄으로 힘든 일들도 있지만, 돌봄을 통해 배운 점들도 많았어요. 그런 의미에서 돌봄이 지닌 가치를 알리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우리가 특정한 시점과 상황을 고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돌봄이 필요한 사람, 돌봄을 주는 사람으로 나누는 것 같아요. 이렇게 되면 건강한 관계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규정해서도 안 되고요. 그래서 복지 영역에 있는 분들도 무언가를 제공하는 사람과 수혜자로 나누어 보는 관점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위계가 느껴지면 거부감이 생기고, 이러다 보면 회복을 함께 하는 게 힘들어지기 때문에요.


Q. 당사자와 전문가로서의 경험이 있기에 나눠주실 수 있었던 이야기인 것 같네요. 질문을 이어나가볼게요. 가까운 사람을 돌보면서 많은 감정들을 느꼈을 것 같은데요. 때로는 나의 시간을 나에게 온전히 쓸 수 없다는 점에서 억울하기도 할 것 같고요. 돌봄을 하면서 어떤 마음이 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는 억울하기도 했지요.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도 깊이 할 수 없다보니 우리 집만 힘든 것 같았고요. 집에서는 힘든데 밖에서는 또 괜찮게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요새 친구들이 제가 돌봄 관련 활동을 한다고 하면 놀라요.


Q. 친구분들이 사정을 모르셨나보네요.

그랬나봐요. 오히려 더 밝게 지내려 했던 것 같아요. 그치만 신체적으로는 오른쪽에 계속 통증이 있고, 사람이 조금만 많은 곳에 가도 숨 막히고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고립감으로도 이어졌고요. 하지만 심리 쪽을 전공하게 되면서 조금씩 가족과 저의 마음을 알아가고 이해해 갈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함께 행복해지고 싶은 꿈을 꾸다 보니, 신기하게도 많이 괜찮아졌어요.

우리는 각자만의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삶을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잖아요. 이제는 삶이 정말 힘들었지만 의미가 있겠거니 생각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억울하지 않더라고요.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삶을 선택할 거예요.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행복한 순간들이 있거든요. 

오랜 시간 입원으로 그리웠던 가족이 퇴원하신 후 함께 꼼장어를 먹는 것, 쇼핑을 하는 것. 그런 사소한 게 다 행복한 거에요.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삶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고요. 이 세상의 많은 아픔도 제가 힘든 경험을 하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수도 있을 테고요. 아프다는 게 누구의 선택이나 잘못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그게 마치 제 잘못처럼 느껴져서 해결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회 문제 해결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그러다 얼마 전에 깨달았어요. 기저에는 죄책감이 있었고, 해결되지 않는 것들을 조금씩이라도 바꾸려고 하고 있었다는 걸요. 

사회의 문제가 누군가의 삶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잖아요. 아픈 사람의 자녀에 대한 지원도 없고요. 그래서 목소리 내고 싶고, 아픈 부모님을 돌보는 아이들의 환경에 대해서도 실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물림을 끊어내려면요. 아이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Q. 돌봄의 특징 중 하나가 사람이랑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그렇기에 소진과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돌봄을 서비스로 생각하면 돈을 낸 소비자는 서비스에 대한 요구로 친절을 강요하거나, 이게 지나치면 갑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돌봄의 상품화 혹은 서비스화로 인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오) 돌봄은 지불되지 않는 노동으로 사회에 존재해 왔지요. 흔히 집에서 가족들이 하는 일로 여겨지며 저평가되어 왔지만, 사회구조가 변화하고 인구 고령화, 가족 해체, 돌봄 공백 등의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그동안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돌봄이 이제 위기로 드러나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존에 사적인 영역에서 보이지 않게 흘러가던 돌봄이 점차 서비스화되고 상품화되는 경로로 오게 된 구조일테지요. 이런 흐름은 불가피하겠지만 이럴수록 ‘돌봄의 본질’을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해요.

돌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접근 방식도 달라질 수 있을텐데요.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도 누군가에게는 깊은 돌봄의 표현이 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런 돌봄에 돈을 지불하지는 않잖아요. 이는 돌봄이 반드시 거래만으로 성립되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지점이라 생각해요. 

돌봄이 서비스화될수록 인간적인 연결에서 비롯되는 관계적인 행위라는 점을 잊지 않고 되새겨야 한다고 느껴요. 돌봄을 단순히 서비스로만 정의할 때, 그 안에 깃든 인간성이 지워질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할테니까요. 서비스라는 명목 하에 돌봄을 효율성과 만족도로 환원시키는 순간, 돌보는 사람은 정서노동에 소진되고, 돌봄 받는 사람은 상품의 소비자로 전락할 위험이 있는거죠. 

그렇기에 돌봄을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이라는 점을 기억하고, 돌봄을 거래가 아닌 관계로 바라볼 때, 돌보는 사람과 돌봄 받는 사람 모두 존중 받는 주체로 설 수 있겠지요. 이러한 인식 전환이, 돌봄의 위기를 넘어서 지속 가능하고 인간적인 돌봄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할거라 생각해요.


(조) 돌봄이 값싸게 취급되는 맥락부터 시작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사회화된 돌봄의 형태가 싼 값에 여러 명을 돌봐야 하고, 돌봄 노동자 본인도 취약해지는 상황에 노출되니까 소진 등의 어려움이 강화되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돌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돌봄이 서비스가 되는 순간 필연적으로 소비자나 민원의 주체로서 항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하지만 돌봄 노동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상태에서 항의를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기겠죠. 그래서 돌봄이 서비스이기 전에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는 행위인 관계적 노동이라는 측면을 걸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그것들이 실질적으로 실천되려면 우리가 돌봄을 할 윤리뿐만 아니라 돌봄을 받을 윤리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돌봄 윤리를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돌봄 서비스 안에서도 서로를 존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공공 돌봄, 사회적 돌봄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공공의 책임이 어디까지 있다고 정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조기현 대표님께서는 공공이 어디까지 돌봄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조)영역마다 다르긴 할텐데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기준으로 공공과 민간의 비율이 50%씩 되어야 민간과 공공의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좋은 서비스를 구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90% 이상이 민간이고, 10% 이내가 공공이면 돌봄의 질이 아니라 비용 절감 경쟁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주체가 국가나 지자체에 한정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모인 기관에서도 공공성을 가져갈 수 있고요. 시민사회도 돌봄의 주체라고 한다면 공공의 사업을 위탁받아 돌봄을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공공돌봄 분야의 한 축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N인분 홈페이지 https://ninbun.org/


인터뷰어 : 이광호
정신질환과 고립을 경험하고 있는(혹은 경험한) 당사자들이 모여 활동을 직접 기획·운영하는 펭귄의 날갯짓 활동가입니다. 현재는 경기도 수원에서 동료지원쉼터 '친구네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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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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