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어린이들의 삶을 깊이 있게 만나고 교감하고 싶은 페미니스트 교사, 여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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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의 삶을 깊이 있게 만나고 교감하고 싶은 

페미니스트 교사, 여름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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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커뮤니티 서점 ‘홍예당’에 방문했을 때의 여름. 출처:민뎅



안녕하세요, 여름님. 오늘 시간은 2025년 공익활동가 주간으로 ‘변화를 만드는 활동가’라는 인터뷰예요. 현재 여름님은 시민단체에 상근하는 형태의 활동가는 아니신데, 여름님을 인터뷰하고 싶었던 것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형태와 의제를 담고 있는 활동가를 더욱 많이 드러내고, 만나고 싶어서예요. 어딘가 정형화된 공간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활동을 하는 여름님을 이번에 소개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었습니다.


Q. 먼저 여름님의 자기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네, 저는 햇볕이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를 좋아하는 초등교사 여름입니다. 그리고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이라는 모임에서 각종 소수자 의제에 연대하고 있어요. 주로 학생인권에 연대하는 교사들과 모여서 크고 작은 작당들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인권·청소년인권에 관심이 제일 많아서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권리가 침해받지 않고, 회복될 수 있도록 교실을 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도 합니다.


Q. 방금 여름님의 소개를 들으니, 현재 교사인 직업과 정체성 그리고 학생인권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 연결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교사가 되어서 학생인권에 관심이 생겼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학생인권에 관심이 생긴 이후 하나의 방법으로 교사를 선택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여름님에게는 이것이 서로 섞이고 연결되는 지점이라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야기를 나눠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네, 연결되어 있는데요. 사실 저는 학생 때, 특히 초등학생 때는 교사라는 직업이나 교사라는 사람에게는 크게 관심이 없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체벌을 심하게 경험했는데요. 그래서 저에게 교사는 좋은 이미지라기보다는 악당, 공포, 무서움의 존재였어요. 그런데 그 당시 교사는 사람들에게 선호 직업이었고, 제 주변 친구들 역시도 장래희망에 교사를 적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그걸 보면서 ‘왜 저런 무서운 어른이 되고 싶어할까?’ 의문인 상태였어요. 

그 후 대입준비를 하면서도 합격 수기를 보면 자기소개서에 교사가 되고 싶은 계기로 어떤 교사가 좋았던 경험들을 적은 경우가 많았어요. 그 대다수의 경험들과 달리 저는 어떤 교사가 좋아서 그 교사처럼 되고 싶었다기보다, 어렸을 때 경험한 교사와의 관계나 경험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 교사가 되고 싶었거든요. 

저는 어떤 교사를 좋아하거나 존경해서 그렇게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저를 괴롭게 했던 교사들과 다른 교사가 되고 싶어서 교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인권이란 주제에 대한 관심은 중학생 때부터 자연스럽게 생기게 되었는데요. 사회 교과서에서 만난, 그러나 주되게 다뤄지는 것이 아니라 부록처럼 다뤄졌던 전태일 열사와 같은 내용을 보면서 혼자서 심장이 뛰곤 했어요.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인종차별이나 혐오차별 문제들을 뉴스에서 만나면서 세상의 잘못된 모습을 인식하게 되고 분노했고, 그 당시에 학생인권이란 용어를 알진 못했지만 학교에서 일어나는 각종 불합리한 일에도 관심을 가졌고, 학교를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 이대로의 학교는 이상하고, 학교를 변화시키고 싶은데 그때는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에는 교사가 있으니까 당연히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에게 권위적이었고, 체벌을 가했던 교사와는 다른 교사로서 어린이들을 만나, 나와 같은 부당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하고싶다고 생각했어요.


Q. 개인적으로 저희는 여름님이 교사가 되기 전, 대학생 때부터 만나왔잖아요. 청소년 시절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커뮤니티를 형성했던 건 아니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여름님이 처음 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청소년 때는 사라지는 것에 관심이 많아서, 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기 이전에는 그런 것들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방송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당시 중심이 아닌 변두리의 사람들을 기록하고 알리는 다큐를 좋아했고, 그런 일을 하고 싶었어요. 많은 이들이 조명하지 않고, 때때로 세상에서 잊혀져 가는 것들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저는 한복이나 국악 등 잊혀지기 쉬웠던 한국의 전통 같은 것에도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풍물놀이를 너무 하고 싶어서 대학교에 가면 꼭 풍물동아리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대학에 와서 풍물동아리 가입을 했는데요. 거기에서 한 선배를 만나게 돼요. 그 선배가 자꾸 책을 읽자고 하는 거예요. 물론 제가 책을 좋아했지만, 대학생이 됐으니 놀아야지 무슨 책이야? 생각을 했어요. 정말 재미없는 선배다! 생각하고, 학교에서 저도 재미없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움도 있었어요. 

그래서 그 선배의 제안을 계속 피하다가, 제가 다리를 다쳐서 풍물을 좀 쉬게 되면서 저의 에너지를 외부로 발산하기보다 다친 몸을 회복하면서 내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는 시기를 가지게 되었어요. 그런 시기에 그 선배가 저에게 제안한 것이 있었어요. 그게 뭐였냐면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였어요. 거기 안 가면 안 될 것 같고, 유가족을 외면하는 것 같은 마음에 그 간담회에 결국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요. 그 자리에서 저에게 제안한 선배 외에 다른 선배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사람들이 너무 좋은 거예요. 

앞서 말씀드린 풍물 동아리에서 다리를 다친 것에는 연습환경이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문화 속에서 제 몸을 혹사하면서 발생한 것이기도 했거든요. 그런 문화에 있다가 따뜻하게 나를 환대해주고 인권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니까, 좋은 의미로 벅차기도 하고 이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인권 동아리의 선배들이 제안해준 퀴어, 페미니즘 의제나 모임 등을 그때 다 처음 알게 되고 만나게 되었어요. 그 의제들이 처음부터 쉽게 이해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야기들이 저의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렸어요. 저를 계속 건드리니까 마치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듯이 계속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선배들과 활동을 하면서 이후 페미니즘 그룹에 가입을 하거나 책모임에 가입을 하면서 활동의 영역을 넓혀가게 되었습니다.


Q. 여름님은 교사가 되기 이전에는 교대에서 활동을 이어오신 거네요. 어떤 활동들을 해오셨나요?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시작으로 인권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세월호 참사 시기에 서명을 받는 캠페인도 하고, 특정한 하나의 의제만이 아니라 포괄적 인권을 다룬 동아리여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사건이 생기거나 연대가 필요하면 기자회견도 하고, 집회도 참여하고요. 그러면서 깊이 있게 공부하고 활동을 하고 싶어진 게 페미니즘이었고, 그 뒤 ‘대구여성주의그룹 나쁜페미니스트’라는 팀에 활동가로 참여하면서 집회도 참여하고, 강연도 참여하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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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름님이 깊이 있게 하고 싶어진 게 페미니즘이라 하셨는데요.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나쁜페미니스트 활동가 외 대구에서 청소년 스쿨미투 운동도 함께 해오기도 했는데요. 물론 여름님이 관심이 있었던 학생인권/학교문제와 페미니즘이 만나니 스쿨미투 운동이 너무 잘 연결되는데요. 그래도 좀 더 여름님에게 페미니즘 이슈와 의제가 깊이 있게 가 닿았을지 나눠주시면 좋겠어요.

사실 저는 지정 성별 여성으로서 대상화되면서 겪는 폭력의 경험이 많지는 않았어요(물론 없어야 하지만, 없지도 않았지만요). 그래서 어쩌면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죠. 그런데 제게 페미니즘은 저에게 여성만의 의제보다 더 포괄적인 의제로 소수자를 대변하는 학문이자 운동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게는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서 여성으로서만이 아니라 노동자로 착취받았던 부모에 대해서도 다른 관점을 하고 다른 이해를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이 사회가 소수자를 어떻게 잘못된 방식으로 대하는지 알게 되고 위로를 받고 했어요(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 등을 통해). 이런 걸 이야기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면, 내가 안 할 이유가 없다! 나를 잘 해석하고 나의 삶을 잘 설명하는 언어이자 학문이자 운동이라고 생각했어요. 페미니즘이 소수자들을 위해 건네는 환대의 손짓이 너무 좋았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페미니즘을 알려준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장이라면, 내가 여기에 꼭 발을 붙이고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Q. 성별 기제는 어느 곳에나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불평등이나 차별 문제에서는 그것만이 작동하는 것은 아닌데요. 여름님에게 페미니즘은 다양한 정체성과 위치성의 교차들을 더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되었던 것 같네요. 저는 여름님을 대학에 다닐 때부터 알아왔잖아요. 학내에서 활동을 하면서는 어떤 조응이나 부대낌의 경험이 있었을까요?

학내에서는 저에게 실제로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해를 가한 적은 없었지만, 저를 좀 유별나고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기는 했어요. 제가 뭘 하는지 알게 된 학내 구성원들은 앞에서는 대놓고 뭐라고 하지 않고 저를 착한 사람이라 했지만, 뒤에서는 정치적인 사람이라고 수군거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교대의 특성상 ‘정치적’이란 것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다른 대학에서는 정당활동이나 정치활동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기도 했는데, 교대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면 낯설어하는 편이어서 제가 하는 활동들이 그렇게 유별나기보다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는데도 뒷이야기들이 존재했어요. 

또 제가 수업 때 교수의 문제적 발언에 문제제기하면 저를 유별나게 보는 사람도 있어서 위축되기도 했지만, 저는 그것으로 인해 문제에 대해서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참는 게 더 괴로워서 그냥 실천을 하는 편이었습니다. 또래 학생들에게 혐오차별 용어를 듣고 공격을 받았을 때는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저의 행동이나 활동을 숨기고 싶진 않았어요. 그것을 숨기는 것이 더욱 힘든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Q. 위축되기도 하고, 힘든 시간들도 있었는데 여름님은 왜 계속 활동을 하셨나요?

음, 뭔가 이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것을 모른 척하면 그것이 제게는 더 힘들어서요.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 것도 힘든 것이지만, 내가 사회의 부당한 것과 불균형한 것을 모른 척하는 것이 더 힘들어서 선택을 한 것 같아요. 둘 다 힘들지만, 내가 덜 힘든 걸 견디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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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여름님의 교사가 되기까지의 ‘과정기’를 좀 나눠 볼까요? 당시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과는 좀 다른 선택을 하였고, 그 시간을 지나 지금의 모습이기도 하잖아요.

네, 저는 3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그 때 지원을 받아 시민사회단체에서 수개월 체험형 인턴 활동을 하였어요. 당시 이주여성운동을 하던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나서 4학년으로 복학을 하였어요. 보통은 교대 학생들이 4학년 때 교사가 되기 위한 임용공부를 해요. 그래서 만약 합격을 한다면 졸업과 동시에 교사가 되어 현장으로 투입되는 건데요. 저는 4학년 때 임용공부를 하지 않았어요. 

제가 이렇게 말을 하면 많이들 “그럼 너는 다른 일을 할 거야?”라고 물었는데, 저는 교사가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교사가 되고 싶었는데, 그때의 저는 임용공부를 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단은 제 원가족의 경제사정이 불안정했는데, 임용공부에 집중하려면 공부과정 등에 기초자본이 필요하고 공부를 안정적으로 하려면 거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러면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다 저에게 고민이었고 걱정이었어요. 물론 어떻게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 저에게 그런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은 경제적 사정에서도 고민이 컸고, 그리고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선뜻 용기가 안 났던 것 같아요. 임용이라는 것이 모든 시험이 그렇듯 줄 세우기 식이고 누군가는 탈락해야 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행위가 제 신념에서 납득이 되지 않아서 임용 공부를 하지 않으며 지내고 졸업을 했는데요. 

졸업 이후 저의 생활을 책임지고 임금노동을 해야하니까 비정규직 교사로 일을 했어요. 협력교사라고, 담임교사를 보조하는 역할의 노동으로 그 해에 시간을 보냈어요. 그 일을 하면서 비정규직 교사라는 것이 물론 다른 비정규직 노동보다는 안정적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안정한 위치란 것을 인식할 수 있었고, 또 기간제 교사로서 생각한 가장 큰 한계는 학생들과의 관계였어요. 

제가 교사가 되어서 학생들의 삶을 깊이 있게 만나고 교감하고 함께 좋은 교실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갖기 어려운 구조였어요. 그게 가장 답답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임용이란 방식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불안정한 위치와 학생들과의 관계맺기에 대한 고민으로 임용을 보게 되었고, 작년 하반기부터 정규직 교사로서 학교에서 노동하고 있습니다.


Q. 그럼 이제 교사가 된 여름님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활동도 하시잖아요?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은 제가 만든 것은 아니고 저의 동료 교사들이 만든 모임인데, 저는 만들어진 이후 합류하게 되었어요. 학생인권·청소년인권에 관심이 많은 교사들의 모임으로 학교와 학교 밖에서 교사들이 무언가를 할 때, 항상 학생/청소년의 권리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권리가 침해될 때 문제제기 하고, 학생들의/청소년들의 동료가 되는 존재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에 주력하지만, 그 뿐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 의제에 연대하고 있어요. 최근 몇 년간 ‘교권’에 대한 이슈가 뜨거웠는데, 이 모임에서는 대다수의 교사들이 이야기하는 주류 입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교권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고요. 누군가를 가르칠 권리라는 것이 학생인권을 앞설 수 없다고요. 그리고 교사에게 필요한 권리는 교권이 아니라 안전하게 노동할 권리라고요. 교권 이슈가 뜨거울 때마다 이것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을 내왔어요. “그런 교권은 옳지 않다”는 기고글을 싣거나 집담회를 하거나 기자회견을 하거나 하는 활동을 해왔습니다.


Q. 교권 이야기가 나와서 생각났는데요. 제가 여름님이 교사가 되고나서 교사로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는 서이초 사건 관련 집회에서의 발언이었는데요. 사실 서이초 사건과 같은 일은 누구나 일어나서는 안 되었던 사건이었다고 동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의 대안이나 이 사건을 대하는 방식이 모두 동일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때도 주되게 나온 것이 ‘교권’이었고요. 당시 여름님이 지역 집회에서 교권의 문제제기 및 비정규직 교사로서 이야기를 했던 것이 많이 회자되기도 했는데요. 이 이야기도 나눠보면 좋겠어요.

그때 제가 발언에서 했던 말은, 기간제 일을 하면서 사직서를 냈던 경험과 관련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만난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 너무 버거운 상태여서 사직서를 냈는데, 당시 관리자나 선배 교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크게는 두 가지로 동일했어요.  

첫 번째는 ‘선생님이 너무 착해서 애들을 잡지 못해서 그렇다’는 거였고, 두 번째는 ‘요즘은 애들을 때리지 못해서 그렇다’는 말이었어요. 그러니까 예전처럼 소위 학생들을 “잡을” 수 없어서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는 거라는 말이었는데, 저는 그 두 가지 말에 모두 동의가 되지 않았어요. 제가 착해서라는 개인의 문제도 아니고, 학생들을 때리지 못해서도 아닌 구조의 문제라고 인식했어요. 

학생이란 악마와 교사라는 피해자라는 이분법의 문제가 아니라 학교 구조의 문제이기에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는 거죠. 옛날보다 수가 적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 교실의 어린이 인원은 과밀한 문제가 있고, 자신의 선택 여부와 무관하게 하루종일 그 교실에 있어야 하고 통제받아야 하는 것이 어린이들의 여전한 현실이에요. 

또한, 물리적인 폭력은 예전보다 줄었을지 몰라도, 하교 후에도 학원을 돌며 입시에 시달리거나 줄세우기식 경쟁에 계속 투입되어야 하는 등의 문제는 훨씬 심각해졌잖아요. 자신의 인권, 권리가 유예된 채 통제받고 비어린이들이 시키는대로 있어야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갈등과 폭력적인 상황들이 교실에 존재하는데요.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독박교실 속 1인의 담임교사라는 것은 구조의 문제이지, 학생들을 때리거나 무섭게 혼내는 것으로 해결될 수 없어요. 

그런데 그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고 교권이나 교사의 권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권은 파이싸움이 아니기에 같이 존중받아야 하는 건데, 학생들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교사의 권위를 찾고자 한다면 그것은 모두가 존중받는 방식이 아닌 것이고, 모두가 안전할 수 있는 학교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손쉽게 누군가를 억압하겠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주류인 것에 너무 답답해요. 특히나 교육을 한다는 현장에서 그런 이야기가 오가는 것이 허탈하고 절망적이기도 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Q. 교사가 되고나서 ‘연대하는 교사잡것들’을 통해 고민이나 지향하는 가치에 대해서 나눠지고 있고 활동하고 있을텐데요. 하지만 여름님의 현실에서 같은 학교거나 일상을 보내는 것은 아닐텐데요. 여름님의 일상/현실에서 교사로서 드는 고민이 있을텐데요. 그런 것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 그렇죠, 제가 일단 학교에서 겪는 고충은 한 학급의, 하나의 교실 안에 학생 인원이 너무많다는 거예요. 저는 초등학교는 돌봄의 영역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돌봄에 대해서는 여러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저는 공교육은 돌봄 역시 주되게 다뤄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의 상황에서 적은 수의 인력을 갈아넣듯이 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고 정부에서 더 적극적이고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어쨌거나 학교는 공교육의 공간이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양육자의 소득수준 등 계급적 차이나 양육자가 쏟을 수 있는 정성이나 돌봄의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양질의 돌봄과 교육을 받아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문제는 너무 좁은 교실에 많은 학생들이 존재해요. 그 안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져요. 또 그 공간에서 폭력적인 상황들이 계속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을 계속 보아야 하는 저의 위치가 힘든 지점이기도 해요. 이러한 근본적인 구조 문제가 있고, 그것이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인 거죠. 지금 당장 제가 근본적 변화를 만들지는 못하니까 슬픈 채로 그것을 고스란히 감당하면서 에너지를 쏟으며 버텨야 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소진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 어려움은 동료교사들이 학생인권에 관심이 적은 것이 외로워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요즘 애들이 이상하다고만 하지, 구조적 문제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여전히 드물거든요. 그러다보니 학교 내에서는 말을 참게 되고 외로워지는 것 같아요. 물론 저의 고민을 진지하게 나누고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있지만, 현장에서는 대부분 저 혼자라는 것이 외로운 것 같아요.


Q. 소진되는 여름님은 어떻게 버티거나 채우나요?

처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이 현실을 바꿔야겠다! 학교 자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개인으로서는 쉬운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최근 저는 온오프를 잘하고 저를 돌보는 데에도 힘을 쓰고 있어요. 개인적인 노력으로 귀결되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지금 당장 현재에서는 저를 지키기 위한 노력들을 하고 있어요. 물론 이것이 매우 잘 되는 것만은 아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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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 권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하셨어요. 이 이야기도 나눠볼까요?

(여름님이 참여한 두 권의 책은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다>, <다름으로 환대하며 존재로 가르치는 별별교사들2>)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다>는 제가 앞서 말한 서이초 사건 때 집회에서 한 발언과 저의어린이 인권 활동을 보고 제안을 주셨고요. <별별교사들2>는 제가 겪은 기간제 교사의 경험이 담기면 좋겠다고 제안을 해주셔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Q. 글을 써서 책으로 출간되는 것은 현장에서 교사로서의 활동들과는 또 다른 방식의 활동이기도 한 것 같아요.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가닿는 것이기도 하고요. 여름님은 어떤 마음으로 함께 하게 되셨을지도 나눠주시면 좋겠어요.

‘연대하는 교사잡것들’ 활동도 그렇듯이 저의 다른 활동들은 많은 교사들의 이야기와 같지 않고 다른 경우들이 많은데요. 저는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교권 회복과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노동자로서의 노동권과 학생들을 통제하지 않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런 이야기를 기존에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이 제 글을 보고 단박에 동의할 것이란 생각은 물론 하지 않는데요. 다만 저와 비슷한 생각이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드러내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있다면 저의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졌어요.


Q. 여름님이 교사로서 혹은 청소년 인권 운동가, 페미니즘 활동가 등으로 지내오면서 마음에 오래 남은 장면이나 기억이 있을까요?

교실에서의 일화도 된다면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저에게 학교는 너무 슬픈 공간인데, 동료가 해줬던 말 중에 “학교는 슬픈 공간이다”라는 말이 타투도 하고싶고, 묘비명에도 새기고 싶을 정도로 공감되는 것인데요. 저에게 학교는 너무 슬퍼서, 이렇게 슬픈 공간에 내가 계속 있어도 되는 것인가 회의도 들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학교를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슬픈 와중에도 발견하는 반짝이고 기쁜 순간이 있어서예요. 

그래서 그런 순간이 기억에 남는 장면인데요. 저에게 청소년인권/어린이인권/학생인권은 제 안의 어린이/청소년을 제가 존중해주는 방식으로 발화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학생에게 존중의 말을 하면, 마치 존중받고 싶었지만 존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제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치유를 받는 느낌으로 어린이 인권에 관한 실천들을 행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원가족과의 관계에서 억울하고 부당한 일을 경험하고 저에게 나눠줄 때가 있는데요. 그때 제가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을 건넬 때, ‘아 내가 이 말을 하기 위해서 이 순간까지 버티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학교에서 다른 교사와 저희반 어린이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해당 교사가 학생들에게 협박성 말을 하게 된 문제가 있었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 학생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 나누고 해당 교사에게 문제제기 할 언어들을 정리하였고, 학생들이 스스로 사과를 요청했거든요. 

(다행히)그 교사 분께서 진심으로 사과를 해주셨어요. 이런 일을 겪으면, 제가 어렸을 때 저에게 가해를 한 교사에게 사과를 요청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순 없지만, 지금 만나는 어린이들이 비슷한 폭력을 겪었을 때, 사과를 요구하고 사과를 받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조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때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아요.


Q. 청소년 인권 운동을 하면서 여름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어린이들을 존중하기 위해서 교실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과하는 것’이에요. 제가 이렇게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결국 저도 일상에서 학생들에게 실수하고 잘못하는 존재인데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잘못을 한 뒤에 어린이들에게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무결한 사람이 아니니까 항상 완벽한 모습은 아닌데요, 대신에 제가 잘못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잘못에 대해서 회피하지 않고 사과하기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저를 괴롭게 했던 교사들을 떠올릴 때,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제일 커요. 위계와 관련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사과하고 다시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단 생각을 하게 돼요.


Q. 잘못할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정확하게 사과할 수 있는 것. 매우 중요한 이야기 같아요. 여름님은 학교 안에서든 학교 밖이든, 여름님이 가진 정체성과 위치성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이 자신의 주장/의견을 잘 드러내고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은 것 같아요. 개인의 노력으로 치중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면 그것은 좀 슬픈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당장 학교의 구조를 바꿀 수 없다면 지금 학생이란 위치의 어린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조력자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해요. 

최근 학생들과 다른 교사와의 문제에서 학생들이 교사가 한 말에 대해서 차별이고 문제라는 것을 말할 때, 어떤 희열감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이 학생들이 어쩌면 끝끝내 사과받지 못할 수 있고,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경험하는 부당함에 대해서 인지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앞으로도 학생들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교실을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지금 여름님에게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가 있다면? 혹은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최근에 동료가 해준 말인데요. 내가 별로인 모습을 보였을 때, 오히려 그 상대방이 저 사람 별로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 저 사람도 저런 모습이 있구나? 나도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저 사람에게 보여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이었는데요. 그 말이 저에게 한동안 맴돌았어요. 제가 눈치도 많이 보고 소심하기도 해서 나의 별로인 모습을 계속 인식하고, 못난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갖기도 하는데, 발상의 전환이 되었던 것 같아요. 

제가 잘 보이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저의 별로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을 때 오히려 그 역시 저에게 좀 더 솔직한 모습을 편하게 보여도 괜찮다, 실수해도 괜찮다는, 이른바 안전함을 형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아요. 나의 별로인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이 관계에서 오히려 괜찮은 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최근에 저에게 좋았던 지점인데요. 물론 저의 기존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진 못하겠지만, 요즘의 저를 계속 도와주고 있고 앞으로도 강화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일에서도 그렇고 사적인 관계에서도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름님,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를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제가 곧 서른이 되어가는데, 이십 대 초반에 학교 과제로 민뎅을 인터뷰했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제가 민뎅의 인터뷰 대상이 된 것이 신기하고 좋은 순간이라 생각되어요.”


여름의 인터뷰 마지막 말은 나도 내내 생각했던 말이었다. 약 10년 전, 그가 나를 인터뷰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생각이 내 마음에도 일었다. 그리고 10년의 시간동안 여름은 페미니스트로서 또 교사로서 안전과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버텨오고 있고, 살아오고 있다. 그 시간을 목도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로서 활동가 여름을 기록해본다.



인터뷰어 : 김민정
대학원에서 공부하며 대구퀴어문화축제 공동집행위원장, 기본소득대구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대구여성주의그룹 나쁜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 지역에서 퀴어페미니즘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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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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