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춤과 노래로 저항하다 - ‘혁씨’ 혜원의 즐거운 투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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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과 노래로 저항하다 

- ‘혁씨’ 혜원의 즐거운 투쟁기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후 혜원과 나는 글쓰기 모임을 하고 있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낸 후보가 대통령이 된 사실에 큰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혜원은 “사람들이 촛불집회가 재밌었나봐. 또 하고 싶나?” 혜원이 촛불집회를 운운하며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얘기한 시점은  이제 막 윤이 취임을 한 직후 였다. 윤은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혜원의 마음속에서 이미 ‘탄핵 카드’가 있었다. 나는 혜원의 똘끼 가득한 혁명가 마인드에 까르르 웃으며 “혁씨(혁명의 씨앗) 혜원”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재기발랄한 혜원과 내가 나눴던 3년 전 대화는 정확히 윤의 미래가 되었다. 윤이 탄핵되었을 때 혜원은 오열하며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걔는 아니라고!!” 혜원의 오열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혜원은 2024년 7월, 안티페미니스트 윤석열에 맞서 최초로 윤의 관저앞에서 탄핵 소요 문화제를 벌인 기획자이이다. 차별, 혐오주의자, 안티페미니스트 윤석열 대통령에 맞서 저항했던 많은 여성 활동가들 중 혜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자기 소개를 해주세요.

북한산 큰 숲, 은평구에서 갑목일주를 가지고 자기만의 방에서 살고 있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주로 종로구에서 팔뚝질하고 가끔 불광천에 출몰합니다.


Q. 지난 3년간 윤석열(이하 윤) 탄핵을 위한 혜원의 여정을 듣고 싶은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윤 대통령 후보가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폐지”라고 공약을 올리는 거 보고 얼토당토 않고, 공략이 전반적으로 성의도 없고 예의도 없고 지식도 없고 상식도 없고 너무 경우가 없는 거예요. 여가부 폐지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사람이 그딴 식으로 너무 간단하게 여가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니까. 근데 그런 사람이 당선이 됐잖아요. 비상식적인 공약을 들고 나온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건 충격적이었어요.

진짜 내가 사회운동을 안 하면, 윤에 대해서 내가 이건 잘못된 겁니다라고 얘기를 안 하면은 내가 이 사람을 죽일 것 같은 거에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고 누군가로부터 차별, 폭력을 당하지 싶지 않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면 안 되잖아요.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사회 운동을 하고 윤석열을 반대한 거예요. 윤, 너가 여가부 폐지하고 여성 정책 반대해? 난 너를 반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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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 선포 기자회견 (2022년, 사진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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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가부폐지저지공동행동에서 했던 여가부 기능 축소, 유명무실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 후


윤 취임식 날, 폭발한 분노의  눈물


Q. 윤 대통령 취임식날 기자회견을 했었죠? 

윤 취임식 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폐지하라라는 현수막,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했는데 국회 바로 입구도 아니고 한 몇 백 미터 떨어져 있었거든요. 그리고 사람들도 우리를 그냥 보는둥 마는 둥 하고 지나갔어요. 근데 경찰이 우리를 보더니 현수막을 내리라고 하는 거에요. 우리가 불응을 하니까 경찰 3명이 오더니 현수막을 잡아서 끄는데 그 3명이 우리 10명을 줄다리기처럼 끄는 거에요.

제가 그 날 영상 담당이라서 찍고 있었는데 10명이 질질 끌려가니까 미치겠는 거예요. 나는 이거를 기록을 남기는 역할인데, 내가 붙는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더 당기면 그렇게까지 안 끌려갈 것 같고. 내가 이걸 계속 이걸 찍는 게 맞나, 지금 내가 저기 붙어야 되나, 근데 이게 기록이 필요한데 그래서 저희가 그 입구에서 한 500미터를 끌려 나왔어요.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얼마나 울분이 쌓이고. 내 동지들이 끌려가는 거를 본 거잖아요. 한 500미터쯤 끌려 나와서 우리가 이쯤이면 됐잖아요 하니까 놓고 가더라고요.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좀 더 걸어가니까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라 그 앞에서 현수막 펴고 기자회견을 했었어요.

밥 먹고 나왔는데 전철은 무정차 통과하고 차도 통제되어 버스도 안 오고 집을 어떻게 가야하나 둘러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뭐하는지 보러 갔는데 오토바이가 휙 지나가고 차가 또 지나가고, 또 지나가고, 대통령이 이제 지나가는 거야. 미치겠는 거예요. 너무 힘들어서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어요.

그러고 나서 국회의사당 전철역 풀렸다고 해서 국회의사당 역사와 승강 대합실로 가는데 사람들이 그 취임식에서 나눠준 것 같은 선물을 다 차고 있는 거에요. 펜던트 하고 그 모자 가리기 선캡 같은 종이로 만든 선캡 햇빛 가리개를 쓰고 있는데 너무 행복해 보이는 거야. 그걸 보면서 나는 계속  화나고 짜증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는데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그 사람들 보니까 눈물이 났는데 지하철 타기 전까지 계속 눈물이 안 멈추는 거예요.


Q. 왜 눈물이 난 것 같아요?

내가 윤이 당선되어 기뻐하는 사람들과 세상을 공유하고 살아야 된다니. 나도 내가 원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훨씬 즐거웠겠죠. 근데 이 사람들이 이렇게 웃고 즐거워하는 게 내 인생에서는 너무 최악의 결과로 돌아올 것 같은 거예요. 내가 뽑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았던 대통령이 돼 가지고 내 삶이 너무 망가져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2016년도 페미니즘 리부트로 여성운동이 쌓아 왔던 것들이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질 것 같다라는 생각이 막 들면서 눈물이 막 나는 거예요.

근데 2024년 12월 14일 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잖아요. 그 소식을 들었던 곳이 취임식날 질질 끌려와서 기자회견 했던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였어요. 그 날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가 제 인생에서 영원히 의미가 바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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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가결 후 기쁨의 기념 촬영


Q.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가 그런 의미가 있었군요. 그러면 본격적으로 2024년 7월 ‘최초’로 윤 집앞에서 탄핵 소요문화제를 진행했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소요문화제를 기획하게 된 배경부터 얘기해 주세요.

제가 집회 시위 바로 알자라고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들었었어요. 그래서 집회 시위법, 집회 시위의 역사 이런 내용을 듣고 집회 시위 대응도 해보고. 그리고 강연에 최종 과제가 직접 집회 시위 신청을 하고 집회를 한 번 해보기였어요. 근데 장소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니라 장소 미션이라 쪽지를 뽑는 거였는데 제가 대통령 관저 앞을 뽑은 거예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관저를 옛날 국방부 장소로 생각했는데 다른 분들이 관저가 난이도가 제일 높다는 거예요. 

저는 어떤 집회를 기획하면 좋을까 얘기를 하다가 저는 집회에 가서 행진하면서 친구들이랑 춤췄던 거밖에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럼 우리 신나는 거 하자고 결론이 나서 소요문화제로 결정했어요. 집회 시위법상 문화제가 규제가 덜 하기도 해서 날짜를 정해서 접수를 하러 갔는데 접수조차 못하게 하는 거예요. 접수 하는 것을 거부할 수 없고, 접수를 받은 다음에 제한 통고를 내든지 하면 되는 건데, 접수조차 안 받아서 2시간을 실랑이 하다가 겨우 냈어요. 


Q. 저는 소요문화제의 제목이 “[관저앞 관둬! 소요문화제] 우리의 소원은 탄핵!”이었고 포스터가 윤이 두 손모아 기도하고 있는 장면이라서 정말 인상적이었는데요. 접수부터 만만치 않았지만 문화제가 정말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힐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일들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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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터에는 장소가 루터교회 앞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경찰의 요구로 장소를 갑작스럽게 변경해야 했다.[관저앞 관둬! 소요문화제] 우리의 소원은 탄핵 홍보물 (출처 : 불꽃페미액션)


소요 문화제 일주일 전에 신남성연대인가 하는 곳이 불꽃페미액션 SNS에 홍보물을 봤나 봐요. 그리고 루터 교회 앞에 신고를 낸 거예요. 집회 신고를 할 때  경찰이 이 날짜에는 루터 교회 앞에 선순위 집회 신고 낸 게 없다라는 걸 확인을 받았어요. 근데 문화제  일주일 전에 전화 해서 OO이가 먼저 집회 신청을 냈다 얘기를 하는 거에요. 그리고 상호 충돌하는 집회가 진행될 경우에는 경찰이 제재를 해야 되는 의무가 있어요. 우리가 선순위 단체인데 우리한테 조정을 하라고 해서 문화제 코앞에 두고 루터교회에서 한남뜨락으로 장소를 변경했어요. 

그리고 문화제 전에 리허설을 하는데 경찰이 소음 규제 데시벨을 넘는다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공연하는 분들게 파워를 좀 낮춰달라고 요청드리고 공연하시는 분들은 평소에 50%도 안내는 거라고 하셔서 난감했죠. 그리고 우리보다 경찰이 너무 많았어요.  문화제에 사람들이 많이 안 올 것 같은데 경찰이 통행을 막는 큰 펜스를 치고.  

그날 폭우가 왔는데 변경된 위치가 교량 밑이라 빗소리도 무지 컸는데 문화제 내내 경찰이 소음 규제한다고 저를 계속 불러냈어요. 마무리하면서 우리가 이거 진짜 열심히 쓴 선언문을 읽으려고 하는데 경찰이 경고 방송을 하면서 당장 음향기기 사용을 중단하라고 얘기 하는 거예요. 그래서 당시 사진을 보면 처음에는 선언문 낭독할 때 마이크를 들고 있다고 나중에는 마이크가 없이 선언문을 읽어요. 

소요 문화제에 참여해주신 분들 중에 가족 단위도 있었고 어린이도 있었고 공연 장비도 있고 대부분 무상으로 대여해 준 장비들이었는데 압수한다고 했을 때 맞서 싸워야 하나, 어느 정도로 싸워야 하나, 싸워서 안 다칠 수 있을까 참여자들에게 트라우마가 되지 않을까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고 선언문을 읽다가 마이크 사용을 중단했어요. 

어떻게 보면 타협이었던 거죠. 내가 타협할 수 있는 선은  다만세는 듣는다 였어요. 소요문화제하면서 경찰 때문에 많이 포기했거든요.  30분 디제잉 못하고. 그래서 딱 한 곡만 하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된다고 하니까 우리가 너무 빡치잖아요. 나는 강행하고 싶죠. 근데 이제 관리자가 되면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여기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안전에 대한 책임도 나한테 있고 대여한 물품들의 재산에 대한 책임이 저한테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 ‘다만세’는  합창으로 바꿨었죠. ‘경찰 니들이 우리한테 이렇게 해? 그러면 우리는 목소리를 내겠다. 이 목소리도 음향 장비라고 한다면 체포해라’ 이런 생각으로 같이 불렀던 것 같아요.


Q. 그래서 우리가 음향장치 다 끄고 핸드폰으로 다만세 틀고 우리 목소리 불렀잖아요. 항상 다만세가 신나게 부르는 노래인데 그때가 제가 그동안 불렀던 다만세 중에 가장 슬펐어요. 처음으로 울면서 불렀던 것 같아. 그날 우여곡절이 많았잖아요. 교량 밑이라 갑자기 폭우가 내려서 물이 넘쳐 흘러서 전기 쇼크도 올 뻔하고.  열심히 준비했는데 참가 인원도 적고, 경찰은 계속 방해하고, 비는 오고 너무 서러운데, 함께 다만세를 부를 동지가 있다는게 감동적이기도 하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울었어요? 운지 몰랐네. 참여자들이 더 왔으면 경찰들이 개난리 필 때 같이 대응하고 견제도 되고 이랬을 텐데 그게 좀 아쉽기도 했고 뭔가 열심히 한 거를 더 많은 사람이 즐겨줬으면 좋았겠지만 우리가 즐거웠잖아요. 그날 다사다난하고 사건 사고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담하진 않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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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소요문화제 중 공연이 진행중 모습 (사진출처 : 김선호)


Q. 참, 소요 문화제 관련해서 조사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현재 진행형인가요? 

네, 용산경찰서 경비과가 데시벨 시정 경고 조치를 어겼다고 고발을 했어요. 피의자 신분으로 지능 수사팀에 조사를 받았고 피의자 진술을 이렇게 할 때 저는 그냥 내가 그 현장에서 얼마나 시정 조치를 열심히 했고 소음 규제를 어길 생각 일부러 어길 생각이 없었다라는 나의 입장을 다 설명을 했죠. 

내가 경찰이랑 소통을 하고 소음 규제를 준수하고자 리허설부터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나중에는 음향 장비를 쓰지 않고 마무리 해서 시정 조치를 준수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조사관이 이건 송치까지는 안 될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결국은 수사팀이 검찰에 송치를 했어요. 근데 검찰에서는 소음규제 관련해서 최고 벌금형이 50만원인데 50만원 벌금 명령을 내린 거예요. 검사가 선고한 때가 올해 초라서 한창 탄핵집회를 하던 때거든요. 아시겠지만 탄핵집회는 길거리에 엄청난 스피커 공중에 매달아 놓고 엄청난 데시벨로 하잖아요. 근데 내가 50만 원이라고?


Q. 경찰이 왜 그런 걸까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요. 문화제 참여자가 50명 남짓이었는데 50만원 벌금이라니. 

저도 경찰이 왜 이렇게까지 하나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에는 문화제를 방해하니까 짜증이 좀 났는데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정말 우리의 의도대로 잘 거슬렸다, (권력자가) 긁혔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변에서 정식재판으로 가도 승산이 있다고 해서 앞으로 정식 재판이 진행이 될 예정이죠.민변 뿐만 아니라 공권력 감시 대응 네트워크에서는 이런 집시법에 대한 규제,  소음 규제로 집회를 해야하는 시민단체들을 공권력으로 압박하고 흔들려고 하거든요. 정치 재판이 된 거죠.


Q. 중요한 재판이네요. 저도 소요 문화제를 대하는 경찰을 보면 여성탄압이라고 느껴져서 엄청 화났거든요. 참여자들이 노래 한 곡 부르겠다는데 마이크, 음향 장비 압수한다고 하고. 정말 그럴 필요가 없었거든요. 과한 경찰의 대응이 작은 여성단체를 위협하고 탄압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쪼그만 여성단체가 감히 관저 앞에 와서 탄핵을 외쳐? 이 여자들 혼구녕을 내줘야겠다. 그런 느낌이었어요. 근데 고소까지 갈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저는 윤이 그렇게 지시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윤정권 동안 입틀막해서 쫓겨난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이런게 심기 경호(심기 경호는 전두환 정권 시절 장세동 대통령 경호실장이 ‘대통령의 마음이 편안해야 국정도 잘되니 심기까지 경호하자’는 뜻으로 만든 용어/ 출처 : 경향신문)잖아요. 저도 심기 경호 당한 거죠.


Q. 탄핵 소요문화제가 비상계엄이 일어나기 반년 전이었고, 아직까지 시민단체들에서 탄핵보다는 윤석열 퇴진운동이 막 커져가고 있던 시기였는데  혜원이 생각했던 탄핵 사유는 무엇이었나요?

윤정권에서 약자를 혐오해도 되고 약자가 권리를 외칠 때 소리 지르고 욕하고 삿대질하고 방해하고 혐오하고 폭행하고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늘어났단 말이에요. 저는 이거는 너무 위험한 신호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5년이 지나면은 우리가 차별과 혐오 더 노출되는 거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못 돌아갈 것 같은 거예요. 

근데 어떻게 5년을 참고 기다려요? 5년 이라는 시간은 대통령, 그 사람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권이 갖고 오는 영향, 그 정권의 기조 이런 것들을 5년을 참아서 잘 보내주면 안 돼요. 그래서 소요 문화제때 발언 주제를 윤정권으로부터 차별, 혐오의 대상이 된 여성, 차별금지법(성소수자 장애인), 재난 참사, R&D 예산 삭감, 기후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는 분들을 모셔서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Q. 윤정권이 3년간 투쟁을 계속 하셨잖아요. 그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눈을 뜨면, 제가 아무 저항없이 윤정권에 익숙해지는 거예요. 근데 익숙해지면 안 되잖아요. 내가 익숙해진다고 해서 소수자 정책, 사회운동, 인권 노동에 대한 탄압이 약화되는 게 아니잖아요. 소수자에 대한 차별, 혐오, 탄압은 더 심해지는데 나는 익숙해진다는 게 이게 얼마나 무서운 거예요. 저한테는 그게 레드 라이트가 딱 켜지는 거야. 내가 체념하고 있구나. 이렇게 체념하고 익숙해지는 걸 굉장히 경계를 해야겠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겠다 그게 되게 컸어요. 여가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  기자회견도 가고, 인권, 소수자 집회가 있으면 연대할 때가 있다면 가서 연대 발언도 하고. 

그리고 제가 불꽃페미액션에 처음 윤 탄핵을 작년 7월 강하게 주장했지만 불꽃페미액션 내에서도 ‘퇴진’이 아니라 ‘탄핵’을 설득하기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제가 탄핵 소요문화제를 하고 싶다고 할 때 함께 해주는게 저에게는 중요한 원동력이죠.


“촛불 이후 8년, 광장에 다시 페미니스트가 모였다”


Q. 이번에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에도 참여하셨는데 박근혜 탄핵 집회때와 비교하면 이번 윤탄핵 집회는 이전과 달라졌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저는 그 중심에 집회를 기획하고 조직한 사람들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제 또래 활동가들이 8년 전, 시민참여자에서 활동가로 전환이 되면서 이번 윤석역 탄핵 집회의 집행부가 된 거예요. 물론 비상행동 활동했던 분들이 제 또래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연령대가 다양한데 정말 좋은 분들이 많았어요. 집행부에는 예전에 박근혜 탄핵 집회를 진행했던 분들도 있단 말이에요. 근데 이 분들이 9년 사이에 성소수자·장애 인권,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경험 늘어난 거예요. 

유연하고 진보적인 성향의 기성세대 활동가들이 성인지 감수성이라든지 페미니즘 리부트를 경험하고 나서 그 페미니즘 리부트를 주도했던 활동가들이랑 같이 협업을 하게 됐을 때 저는 이런 시너지가 나왔다고 생각해요. 유연하게 대응하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 함께 같이 갈 수 있는 기조를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왜냐하면 박근혜가 탄핵되고 나서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경험했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는 윤석열즉각퇴진만 있는게 아니라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됐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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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행동 스태프로 활동 중인 혜원


Q. 이번에 윤 탄핵집회에는 페미존이 있었잖아요. 

윤석열이 비상계엄하고 그 주 토요일 대규모 집회를 국회 앞에서 할 때 탄핵 정국 초반부터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그룹 ‘민주주의를 구하는 페미-퀴어 네트워크(이하 민구페퀴)’ 페미존이 만들어졌어요. 저는 그 페미존에 있으면서 가장 위로가 되었던 거 같아요. 제가 윤정권 내내 울고 웃으면서 이 정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했는지 이게 어떤 의미인지 오롯이 이해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고 싶었어요.


Q.  저는 민구페퀴와 함께 행진 하는게 정말 좋았는데 행진 전에 우리가 대오 대열을 맞추는 그 순간이 전 너무 좋은 거예요. 저에게도 차별과 혐오 그리고 소수자와 함께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 대오에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이 제일 앞에 서잖아요. 그게 참 좋아요. 서로의 비빌언덕이 되어주고 든든하기도 하고. 제가 운동권 노래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페미존에서 ‘동지가’를 부를 때 울컥하는 기분이 올라오더라고요. 이런 감정을 처음 느껴봤어요.  저도 동지가 있다는게 위로가 많이 됐고 나를 게을러지지 않게 하는 존재들, 지치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다는 생각을 했어요. 페미존이 있기도 했지만 이번 탄핵집회 광장에 102030 여성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어떤 기분이 들었어요?

저는 약간 페미니즘 리부트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어요. 2016년에 페미니즘 리부트 했을 때, 그때 생각만 해도 이렇게 올라오는데(잠시 말을 멈춘 혜원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 당시 세상이 바뀔 거라 생각했잖아요. 세상이 빠르게 성평등 사회로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안 바뀔 거라 생각했잖아요. 근데 코로나가 왔고,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가 너무 심해졌었고. 우리가 그 동안 한 활동들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어요. 근데 우리가 성평등 운동을 지속했기 때문에 이 여성들이 이 광장에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탄핵 광장에서 페미니스트는 너무 평범한 사람인 거예요. 낙인 찍혔던 꼴페미, 트페미, 페미나치 이런 사람들로 보지않고 페미니스트가 더 이상 특별하지도 않고 이상하지도 않은 곳인 거에요. 적어도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성평등에 반대하는 게 이상한 현장이었던 거죠. 


Q. 드디어 윤의 파면당하는 순간, 어땠어요?

우리가 활동가로 시민사회 운동을 하면서 변화를 느끼는 순간이 많지 않잖아요. 우리가 변화를 바라지만 그것만 쫓고자 하면 활동가로 오래 할 수 없고. 파면한다는 얘기를 광장에서 들었을 때, ‘내가 그동안 했던 게 쓸모없는 게 아니었구나. 내가 부끄럽지 않으려고 한 일들이, 허공에 외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우리끼리만 아는게 아니라. 이렇게 계속 저항하니까 세상이 바뀌네.’라는 생각을 했어요. 활동가로서의 효용감을 느끼고 변화를 확인하는 순간이 온 거죠.

 

ea48fc51d68e7.jpg윤 대통령 탄핵 선고 후 오열하는 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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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탄핵 선고 후 불꽃페미액션 깃발과 함께 기념 촬영


“고통도, 기쁨도 춤처럼… 투쟁은 축제가 되어야 하니까”


Q. 혜원이 대성통곡하며 오열했던게 기억나네요. 너무 고생 많았어요. 혜원에게 탄핵 정국 속에서 가장 뜨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예요?

행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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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깃발을 흔들다 2번째 깃발을 부러뜨리고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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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을 휘날리며 힘차게 행진하는 혜원의 뒷모습


Q. 하하하, 혜원은 행진할 때 무지 즐거워 보이는데 뭐가 그렇게 신나요?

살면서 이렇게 나댈 수 있는 경험이 흔한 게 아니에요. 하하하, 일단은 동지들이랑 같이 있으니까 안심이 되고 우리가 말하는 게 여성 해방이잖아요. 해방된 몸짓을 보여주는 거를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고 내가 해방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몸짓은 계획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그렇게 움직이는 거예요. 노래를 들으면, 발언을 들으면 몸이 나를, 깃발을 흔들어요.(혜원은 지난 4달동안 불꽃페미액션 깃발을 3개 부러뜨렸다.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신나서 흔들다가 부러졌다) 

가끔 다른 집회들에 가보면 너무 결연해 힘이 들어가 있고 격식이 딱 들어가 있고 형식이 정해져 있잖아요. 너무 결연하면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가 있으면 힘들잖아요. 물론 저도 머리에 띠 두르고 팔뚝질하고 조끼 입고 다니는 걸 좋아해요. 근데 그렇게만 하면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시민으로서 의무감, 주권의식 이런 것도 있지만 집회를 진짜 내 것처럼 즐길 수 있고 내 걸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동원돼서 참여하는 게 아니라 내 행사, 축제 우리의 축제라고 생각했을 때 집회를 기다리게 돼요. 그리고 같이 있는 사람들이랑 더 유대감이 생기고 처음 본 사람한테도 그냥 웃으면 아무 말 필요 없고 그냥 웃으면서 춤추면 친해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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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의 날 윤석율 탄핵 집회 행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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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둬 관저 소요 문화제 중 춤을 치고 있는 혜원 (사진 출처 : 김선호)


Q. 혜원에게 즐거운 투쟁이란 어떤 거예요?

집회를 다녀온 후 고단했지만 진짜 재밌었다라고 느끼는 거요. 저는 그 순간이 고행으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십년 뒤에 내가 여기서 개 고생한 것만 기억나면 안 될 것 같은 거예요. 네가 나를 그렇게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막 죽어라 이렇게 해도 난 그런 거 개의치 않아. 난 그 속에서도 웃으면서 춤을 추고 우리는 이겨낼 거다. 그게 우리의 방식이다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고 그게 네 달 동안에 저의 모습이었어요. 

괴로우면 오래 못해요. 그리고 괴롭고 짜증나고 화나는 거, 힘든 건 다 안단 말이에요. 지속가능함을 생각했을 때 괴롭지 않게 만드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게 우리가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요. 두려움, 분노에만 떨고 있을게 아니라 이걸 승화를 시켜야 돼요. 그래야지 사람이 제 정신으로 살 수 있는 거예요. 우리에게 춤과 노래, 즐거움, 유머 이런 것들이 우리의 승화 포인트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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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첩 당시 철야 투쟁 중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지부 선전팀 선호동지가 촬영 중 건네 준 비타민을 응원봉 대신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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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으로 가는 수요일 행진트럭 위에서 직접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틀고서 댄스


영화마저 사치로 느껴졌던 비상계엄의 밤을 지나고


Q. 일상생활에서의 혜원은 탄핵정국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어요?

저는 영화를 전공을 했었거든요. 비상계엄이 터졌을 때 영화 포스터가 진열된 제 방에 있었어요. 포스터가 눈에 보이는데 영화가 너무 사치로 느껴지는 거예요. 예술이 너무 사치스러워. 계엄 딱 터지자마자 의자에 앉아서 내가 예전에 영화를 사랑했던 만큼 영화를 사랑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 지금 현실이, 시국이 이런데 무슨 영화냐는 생각이 극단적으로 들었고 내가 영화를 계속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Q. 지금은 좀 어때요?

저는 얼마 전, 이직을 하고 나서 글도 쓰고 영화도 다시 보게 되고 드라마도 보게 되고 노래도 더 좋아하게 되고 되게 많이 바뀌었어요. 오히려 더 창작욕이 생겼어요. 아마도 이직 후 현장 일을 더 많이 나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이런 것들이 저한테 되게 새로운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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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벽장식된 혜원의 집


Q. 혜원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꼭 지키는 것이 있나요?

휴식이요. 내가 집회 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도 휴식이 필요하면 쉬어야 해요.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몸빵이기 때문에 내가 아프면은 큰 일 나요. 내가 안 가면 다른 사람이 가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아플 때 교대해 줄 사람이 나다. 그리고 내가 집회 나가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쉬고 있는 거다라고 생각해요.


Q. 활동가로서 투쟁하는 삶을 선택하면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무엇인가?

사회를 보는 눈이 계속 기민하게 켜져 있는 게 얻은 것 같아요. 그리고 나와 함께 할 동지를 언제 어디서든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얻은 것 같고 이미 그런 동지들이 옆에 있다는 것도 제가 얻은 것들이에요. 집회에 혼자 가도 아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는게 진짜 얻은 것들이죠.

근데 만약 지금 영화를 하고 있다면 돈은 지금보다 많이 벌고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아 실현을 했겠죠. 지금은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망, 내가 불의에 꺾이지 않고도 잘 살 수 있고 부정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고 느껴요. 영화를 했다면 영화 안에 담기는 ‘한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자아실현을 할 수 있지만 제가 활동가로 살면서 얻을 수 있는 자아실현은 내가 이 세상의 세계관을 만드는데 내가 일조하고 있다 점이에요. 

얼마 전에 엄마가 저희 엄마가 저의 이런 활동하는 모습을 보시고 내 손 밖에 있어도 저렇게 살아도 잘 사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그러면서 너가 훨훨 날아가니까 너무 좋다고 더 날아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인터뷰어 : 여여
불꽃페미액션에서 만난 동지들과 함께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가부장제에 맞서는 여성서사 기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조심스럽게 글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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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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