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응원봉을 흔들며 신라대종 앞에서 강강수월래 - 작아진 비빌언덕 지킴이, 박병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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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봉을 흔들며 신라대종 앞에서 강강수월래.. ‘경주’스럽게 놀자.

작아진 비빌언덕 지킴이, 박병국 PD


피켓을 들고 행진하다 보면 왕릉이 나오고 탑이 나오는 경주, TK의 한복판에서도 윤석열 퇴진 시민행동의 집회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텀블러와 개인방석, 은박담요 등을 챙기고 지하철을 타면 집회에 참석할 수 있는 대도시와 달리 지방 소도시의 집회는 준비하고 꾸려가는 사람이 먼저 결심하고 모이는 것부터 힘을 써야 가능해진다. 에밀레 종을 복원한 신라대종 앞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집회를 만들어 온 박병국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유난히 겨울비가 잦았던 매주 토요일, 스크린 트럭 뒤의 콘솔박스 앞에서 머리를 박고 있던 그를 떠올리며 초록이 무성한 꽃집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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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본인 소개를 부탁드릴께요.

활동가라고 표현하기는 좀 부담스럽네요. 저는 방송 관련 전공을 하고, 서울에서 프로덕션을 운영하다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어요. 지금은 거의 사라진 경주 유림마을에서 태어나고 그 유림 숲에서 자랐거든요. 그 숲에서 자란 기억이 제 삶에 영향을 주었고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고 밥 벌어먹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서울 생활은 여기보다 팍팍하고 바쁘죠. 그러다 보니 일할 때 옳고 그름에 대해 따져볼 생각을 못했어요. 보수당에 대한 거리낌도 별로 없었죠. 제가 일하는 곳이 보수당 오더가 더 많기도 했고, 선거 캠프에서 의뢰가 들어오면 영상을 납품하는데 국힘당 홍보 영상이 가장 많았어요. 화력발전소나 핵발전소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시각의 홍보물을 만들었었죠. 동전의 양면같이 말만 살짝 비틀면 핵도 좋은 연료고 화력발전도 필요하다는 식이죠. 제가 그런 걸 잘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니까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더라구요. 어느 날 아기가 배에 있는데 핵 발전소에 관한 글을 쓰려니 잘 안 써지더라구요. 처음에는 내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더라고요. 글을 못쓰고 2주일 정도 고민해도 답이 안 나와서 아내에게 ‘경주 가서 살래?’라고 말을 했죠. 경주는 고향이고 비빌 언덕도 있으니 경주에서 진짜 핵 발전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자. 내가 그냥 독립해서 하고 싶은 다큐멘터리 제작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경주로 왔어요.


Q. 경주에 와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2016년도에 경주에 내려와서 당장 밥벌이를 해야 하니까 ‘오늘 따옴’이라는 레스토랑을 열었어요. 제가 농업 관련한 일을 많이 한 논바닥 PD였거든요. 작물을 재배해서 그걸 서비스하는 형식의 아이디어로 서양에서 나는 허브들을 키워 식탁에 올렸어요. 근데 이 일이 너무 힘든 거예요. 영상 편집하느라 밤새우기는 많이 했지만 설거지하느라 밤새 본 적은 없었는데 진짜 설거지하면서 밤샜어요. 마지막 손님이 나가고 나면 몸이 퍼져서 설거지가 안 돼요. 그래서 식기세척기도 사고, 경험 없이 확장하다가 그 비용을 다시 상쇄시키기는 너무 힘들고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소상공인 문제에 눈을 뜬 거죠. 이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핵발전소 영상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할 틈도 없었어요.

소상공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야당 지역위원장을 만났어요. 그리고 소상공인 위원장이라는 직책을 덥석 맡았죠. 그 뒤로 지역의 활동가들을 알게 되고 지금은 경주 겨레하나 운영위원과 더민주경주혁신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어요.


Q. 비상계엄이 선포된 시간에는 어디에 계셨나요?

그날 친한 동생의 라이브 공연을 도와주고 집에 들어가서 누웠는데 동행했던 지인이 전화가 왔어요. 밤늦은 시간이라 ‘아, 이 형이 내 차에 뭘 흘렸나 보다’하고 전화를 받았죠.

‘계엄이래!’라고 말하는데 계엄이라는 단어는 아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TV를 틀었죠. 난리가 난 거죠. 핸드폰 보고 유튜브 틀어 놓고 그날 밤을 샜어요. 해 뜨자마자 사람들하고 통화하고 어떻게 되는 거냐 방법이 뭐냐 하다가 다다음 주 토요일에 경주에서 첫 집회가 시작되었어요. 그때 손피켓을 3천 개 준비했는데 모자랐어요. 아마도 3천 명 이상 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2023년에 경제가 너무 엉망이라 이자가 치솟고 소상공 자영업자들이 너무 힘들 때 ’못살겠다‘는 주제로 촛불 집회를 처음 준비해봤어요. 그때의 경험이 이번 집회를 준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전에는 집회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차츰차츰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설득하는 집회의 노하우가 쌓이고 전체적인 연출과 영상을 만들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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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윤석열퇴진 시민행동 집회 장소를 신라대종 앞으로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2023년도에도 그 장소에서 했어요. 그때는 윤석열 정부의 허니문 기간이 살짝 지난 때라 보수적인 경주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사실 두려웠어요. 우리가 처음 집회를 시작하는데 보수지지자들의 공격으로 시작하자마자 호흡이 딱 끊기면 그 뒤로 못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예요. 실제로 야구 포수 마스크와 보호 장구를 다 착용하고 위협하러 온 사람도 있었고 실랑이도 벌어졌어요. 

그래서 경주사람들 말고 외지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에서 시작한 거죠. 지금 생각에는 장소 선택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통행량이 많으니까 오가다가 앉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계엄은 경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주제이기 때문에 외지 사람이든 경주사람이든 상관없죠.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집회나 발언이 있다면요?

계엄 터지고 급하게 윤석열 퇴진 경주 시민행동이 만들어지면서 그분들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급하게 주변에서 빔프로젝트를 빌리고 검은색 천에다가 빔을 쏘았어요. 사람들에게 강하게 전달되는 영상 하나 혹은 한마디의 문구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우원식 의장님이 계엄 해제 결의안 가결을 선포하는 장면을 우선순위에 두고 집회를 시작했죠. 

첫날 3,000여 명이 모인 이후로 부침이 있었어요, 100명이 채 못 모이기도 하면서 어떨 땐 50명, 40명 이렇게 줄어들었죠.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게 무의미하게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이디어가 고갈되는데도 집행부에서는 당연히 그냥 해야 되는 거 아니야 할 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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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그냥 ‘경주스럽게 놀자’고 생각했죠. 설날이 낀 주말에는 광장에서 떡국도 나누고, 대보름날에는 강강술래도 하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져가보려고 애썼죠. 그러다가 충격을 받은 게 윤석열의 석방이었어요. 윤석열이 풀려난 날, 예정에 없던 집회를 그냥 열었어요. 그 날은 집회를 한다는 알림도 없었으니 우리 스텝 포함해서 모두 다섯 명이 모였죠. 다섯 명이 집회를 하니 마이크를 잡을 사람이 부족하죠. 그래서 한 사람은 마이크 잡고 이야기하고 있고 두 사람 앉아 있고 두 사람은 콘솔 잡고 있고 그랬죠. 

그날은 저도 발언을 했어요. 사람들이 오고 안 오고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판을 깔아놓고 안 오는 거는 상관없지만 안 깔면 못 오니까 죄책감은 덜 수 있으니까 그렇게 했어요. 비용 문제는 가지고 있는 장비에다가 기름 반 통만 넣으면 되니까 그냥 하자고 의기투합을 했어요. 

그날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날부터 쭉 22일 동안 사람들이 점점 더 모이면서 매일 집회를 열었어요. 헌법재판소에서 판결까지 광장에 함께 모여서 봤죠.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열어 두고 누구든 하고 싶은 말을 하라는 게 저희 콘셉트이었거든요. 계엄 이후 총 30여 회의 집회를 했는데요. 웹자보를 초기부터 쭉 연결해 보면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단체들이 합류하는 게 보여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게 우리 활동의 의미를 보여주는 지표처럼 생각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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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유림숲 지키기 활동도 하셨죠.

네, 어느 날 유림 숲의 나무들이 아무도 모르게 잘려 버리고 그루터기만 남았잖아요. 그걸 보고 잘린 나무 옆에 우리 아이가 나무를 심는 사진을 하나 찍어서 보도 자료로 뿌리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릴 때는 유림 숲이 굉장히 컸어요. 지금 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부터 황성공원까지 이어졌죠.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 오래 사신 분들에게 유림 숲을 보호한다고 하면 유림 숲이 아직 남아 있냐고 되물으시죠. 

저는 유림 숲이 아직 죽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유림 숲이 형산강 쪽으로 이어지면서 강 사이 사이에 턱이 생기고 식물들이 자랐었어요, 큰 공사를 하면서 그걸 다 밀었는데도 다시 식물들이 사는 턱이 강을 따라 생겼어요. 그러니까 거기가 다 유림 숲이죠. 

지금은 유림마을의 당수나무가 가로수가 되게 생겼어요. 그 당수나무는 실제로 물레방앗간 옆에 있던 거라 옮길 수가 없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오면서 지금의 자리로 왔어요. 그리고 유림 숲 비석도 아직 남아있죠. 저는 그 숲의 비석에 쓰여 있는 글을 그림으로 다 그릴 수 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거기가 무슨 유림 숲이냐고 이야기를 해요. 우리가 흙의 바닥에 켜켜이 쌓여있는 돌무더기 돌기둥 하나를 붓으로 파내어 그걸 문화재라고 하며 보존하는데, 하물며 지금 살아있는 숲을 지키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되죠.


Q. 앞으로 어떤 활동을 더 하실 계획인가요?

얼마 전에 서울에 사는 처남이 경주에 와서 함께 길을 가는데 한쪽에 나무가 베어져 있었어요. 처남이 그걸 보더니 ‘저거 병국이 매형 보면 안 돼’ 그러더라구요. 저에 대한 인식이 바뀐 거예요. 나무를 자르는 행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 그게 내가 규정되는 건데 되게 좋더라고요. 굉장히 반갑게 다가왔어요. 그러니까 과거에는 PD라는 정체성으로 옳고 그른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했던 이야기를 옳은 것처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나는 한 번도 규정이 되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좋은 느낌의 규정인 거예요.

그러다보니 ‘내년 4월 5일에는 나무 어떻게 심어요?’라고 조카들도 물어와요. 숲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차곡차곡 하나씩 진행하고 있는 중이에요.예를 들면 자카르타 아랫동네에 있는 보고르라는 곳에 세계에서 제일 큰 정원이 있어요. 그런 곳에 직접 가보고 관상용이 아닌 진짜 환경을 살리는 기록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황성공원에서부터 시작해서 대만과 중국 쪽을 다 한번 돌아보면서 환경에 대한 시나리오 쓰고 있어요.

또 하나 관심을 갖고 있는 건 한국에 사는 고려인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경주와 주변 도시에 고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받기가 힘들어요. 대부분 구.소련에서 분리된 국가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나라에서 요구하는 ‘우리 민족’이라는 걸 증명하는 서류를 구비하기가 힘들어요. 지역마다 특별 조례가 있는 곳은 그나마 괜찮은데 경북도는 물론이고 작은 도시들에는 그런 조례가 없죠. 이 부분도 제가 해결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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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활동가로서의 비전이 있다면요?

저는 제 가까이에 있는 사회문제에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해결해보려고 합니다. 문제 해결의 방법 중에 아직도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여겨요. 그래서 좋은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도와 주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정치로 인해 자기의 편익을 추구하려는 욕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견제가 제일 먼저 필요하고요. 저는 지금도 우리 사회가 진화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과정을 마냥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응원해 주면서 기다리는 거지요. 결과적으로 괜찮은 정치인이 디폴트 값이 되고 모든 국회의원들이 그 정도 레벨로 올라왔을 때, 그다음으로 좀 더 수준 높은 정치인들이 생기겠죠. 그러니까 지금처럼 정권이 바뀌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디폴트 값들이 평준화가 되고 하나씩 변이를 일으키는 걸 돕는 거지요.


Q.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부끄럽습니다. 지금 어떻게 됐든 간에 촛불 집회 때문에 제가 주목을 받은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내가 만든 게 아니라 거기서 하나의 역할이 있었을 뿐이고 더 중요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게 기분 좋고 즐겁고 으쓱해지기도 한데 사실 여기에 저보다 어울리는 다른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광장의 핵심은 586선배들입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최루탄을 맡아본 적도 없었고, IMF 이후 대학 생활이 지나고 나니까 어느새 멀쩡한 나라에서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연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한테는 경험이 단절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데모라고는 한 번도 안 해본 세대들이 이번에 새로운 경험을 끌어올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데 힘이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인터뷰어 : 윤정임
경주에서 일상 속 공동체의 재난대응을 준비하는 예비사회적 기업 [현관앞비상배낭]을 운영하며 재난피해자 중심의 “재난 현장과 구호의 기록”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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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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