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공익활동가주간]나답게, 당당하게, 익숙하게 산다는 것! _ 행복디자인 사람 대표 활동가 양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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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당당하게, 익숙하게 산다는 것! 
행복디자인 사람 대표 활동가 양준석



양준석 활동가는 지역에서 꽤 유명 인사다. 한번 보면 절대 잊히지 않는 외모도 한몫하지만, 지역 사회에 공헌한 활동가에게 주는 동범상을 받았을 정도로 인재이다. 그는 지역에 사회복지 운동을 일으키며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왔다. 

10년 동안 다닌 인도 여행에서 삶의 방향을 발견했고, 깨달은 바는 ‘행복카페(행동하는복지연합)’이라는 공동체 공간으로 구체화 되었다. “나는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라 말하지만, 그 실천은 지역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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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했고, 그게 사람들과 함께였을 뿐이에요.”


그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는 ‘나답게, 당당하게, 익숙하게’이다. 특별하고 거창한 계획 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람들과 만나고 연결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복지나 운동, 공간이나 삶의 태도 모두 익숙해지면 별거 아니란다.


“안 해본 사람한테는 용기가 필요하지만, 익숙한 사람한테는 그냥 일상일 뿐이에요. 뭔가를 처음 시도할 때 ‘어렵다, 어렵지 않다.’로 표현하는데 저는 ‘익숙하냐, 익숙하지 않냐.’로 표현합니다. 운전도 처음에는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어렵지 않듯이요. 삶과 일이 연결되면 그냥 일상이 되는 거죠.”


인도 여행이 그에게 준 깨달음이자 선물이다. 삶 따로 일 따로가 아니라 삶과 일을 연결해 일상이 되면 익숙해진다는 것. 그가 살아가는 방식은 명료하고 유쾌하다. 그와의 대화는 끙끙대던 고민도 가볍게 풀리게 만든다.



■ 여행, 가장 자기다운 길 위의 시간


그의 삶은 인도 여행 전과 후로 달라졌다고 한다. 그가 처음 여행을 떠난 건 2002년이었다. 참여연대에 있을 때 손발은 굉장히 열심히 움직이는데 가슴이 뻥 뚫린 것 같고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더란다. 그때, 우연히 집어 든 책, 마더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 활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오후 4시의 평화’는 그를 인도로 이끌었다. 일주일 후 인도로 떠났고, 비자 만기 하루 전 까지 6개월을 꽉 채워 여행했다.


“인도는 제게 신세계였어요. 이때부터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인도에서 다양한 사람, 다양한 삶을 보니까 ‘굳이 눈치 보며 살 필요 있나.’ 싶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삶을 더 당당하게 살기로 했어요. 복지운동도, 시민운동도 그때부터 더 당당해졌죠. 인도를 더 알고 싶어서 10년 동안 매년 인도를 다녀왔어요.”


인도만 10년 다니겠다는 자기와의 약속을 마치고,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산티아고 순례길도 다섯 번을 걸었다. 


“40도 되는 그 뜨거운 날씨에 며칠을 계속 걸었어요.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발바닥도 아프고 힘들어 죽겠는데 어느 순간 제 안에서 정말 수치스러웠던 과거의 경험들, 자존심 상한 것들이 막 떠오르는 거예요. 힘든 몸을 이끌고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내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그게 치유의 과정이더라고요. 저를 바꾸려고 노력했죠.”


그에게 여행은 떠남이 아니라 만남이다. 낯선 곳에서 오롯이 ‘나’와 마주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상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만나는 일이다.


“행복카페를 만들 때 여행을 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제가 놀러 갔다고 생각을 했대요. 다녀와서 행복카페 만든 것을 보고 니가 그래서 여행을 갔구나. 여행이 너한테 준 선물이구나. 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 제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이번에 또 무슨 계획을 가지고 올거야? 라고 물어요. 저는 한 번도 계획을 짠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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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의 아이디어와 행복의 실천_행복카페(행동하는복지연합)


“멀리서 답을 찾지 마라. 답은 가까운 데 있다.”


법학을 전공했던 그가 복지운동을 시작한 이유도 독특하다. 총학생회장을 했던 그는 졸업 후 친구들이 노동운동, 농민운동 한다고 떠날 때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고 싶었단다. 98년도만 해도 청주에서 복지는 시민운동이 화두가 아니었다. 그래서 복지를 시민운동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시 사회복지 전공도 아니었고 배경도 없었기에 치열하게 현장에서 배우고 부딪치며 일했다. 무급으로 자원봉사를 하며 사회복지 공부를 병행했다. 이때 좋은 멘토 형들도 만났다. 집이 없어 사무실에서 먹고 잘 때 추운 겨울,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팔굽혀펴기 50개를 하고 찬물 샤워를 하며 지내도 마음은 설렜다고 한다.


“왜 그렇게 설렜냐고요? 제 꿈을 이루는 거잖아요. 복지를 가지고 시민운동을 제대로 한번 해보겠다는 꿈요.”


2012년 문을 연 ‘행복카페’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었다. 그는 까페의 공간적인 개념을 많이 고민했다. 사회적 약자들 중 특히 복지 약자들을 만나고, 청년들과 기성세대가 협업하는 공간이었다. 사람들의 이름표에 청년은 꿈을, 어른은 직업을 적게 해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도록 했고, 필요한 부분을 도와주었다. 혼자 와도 친구가 되고, 동네가 변하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일이 되어지는 공간이 행복카페였다. 


“정말 돈 한 푼 없이 청년들이랑 몸으로 시작했어요. 사람들은 펀드 받거나 사업 공모부터 시작하는데 필요한 물건은 종이에 써서 붙였죠. ‘커튼 필요합니다. 에어컨 필요합니다.’ 그랬더니 누군가 와서 커튼을 달아주고, 에어컨도 주고, 데크는 또 누군가가 연결해 주고,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진 거예요. 핵심은 ‘멀리서 찾지 말라.’는 겁니다. 해답은 항상 가까이에 있어요. 아이디어는 가까운 곳에 있고 관점을 달리하면 보입니다.”


행복카페는 공정무역 물품도 판매한다. 그는 제3세계 나라를 여행하며 직접 가방, 티매트, 머플러 등과 같은 핸드메이드 제품을 사 와 그들과 연대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아직도 하루에 1달러 미만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불쌍하다, 슬프다로 끝내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한 결과가 공정무역이었어요.”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시도할 때 항상 모든 게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치가 쌓이니 확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뭔가 안되면 바로 포기하지 않고,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다 나온다는 것이다. 결국은 ‘되냐, 안 되냐.’가 아니라 ‘찾을 때까지 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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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가,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과 관점을 먼저 키워야 해요.


“활동가로 20~30년을 일했는데 PPT 하나 없는 분들이 많아요. 그건 너무 아쉬워요. 저는 제 이름으로 된 강의만 20가지가 넘어요. 교수님들이 늘 그랬어요. 준석아, 니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해. 그래야 퍼져.”


그는 활동가의 경험이 단순한 현장실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식을 정리하여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책임이 활동가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복지예산학교, 공정무역, 공정여행, 주민조직 방법론, 아이디어 발굴법 등 다양한 주제로 전국을 누비며 강의를 한다. 그는 강의마다 세 사람의 삶을 소개한다. 체 게바라, 마더 테레사, 간디.


“체 게바라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나의 즐거운 놀이였다.’라며 안락하게 살 수 있는 의사였지만 혁명가의 삶을 살았어요. 마더 테레사는 ‘진짜 가난은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온다. 사람과 함께 어울리려고 노력해라.’라고 했고, 간디는 ‘나부터 변화해야 세상이 바뀐다.’라고 했죠. 저는 이 세 분의 말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요.”


활동가 후배들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단다. “중요한 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관점이 있으면 정보는 알아서 다 찾아요. 철학과 관점을 먼저 키워야 해요.”



■ 나는 지금 '3기 운동' 중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3기 운동'으로 나눈다. 1기는 학생운동, 2기는 복지운동, 3기는 후배들의 뒷배가 되어주는 운동이다.


“후배 활동가가 힘들면 채워주고, 부족하면 밀어주고, 공탁(공익활동가를 위한 식탁)도 하고, 같이 어울리며 이야기도 나누고, 뒷배가 되어주는 거죠.”


이런 삶의 방식은 인도의 비노바 바베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간디의 제자였던 그는 20대에 브라만으로 살다가 간디를 만나 인도 전역을 걸으며 ‘토지헌납운동’을 했고, 죽음 앞에서도 암을 ‘내 안의 손님’이라 부르며 사람을 양성하는 삶을 살았다. 


“비노바 바베가 3단계의 삶을 살았듯, 저는 제 삶을 3기 운동으로 나누었어요. 지금이 3기 운동 중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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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 그리고 앞으로의 꿈


그의 요즘 가장 관심사는 충북 청주의 작은 마을 '내암리'에 자신만의 공동체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고, 에너지 자립 마을을 만들고, 코하우징형 주택을 지어 어르신들과 청년이 함께 살아가는 모델을 구상 중이다. 그는 조만간 이 아이디어를 토론회로 펼칠 계획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NGO 건물’을 꿈꾼다. 행복카페 건물을 초창기에 매입하지 못한 게 지금도 아쉽단다. 당시에 대출받으면 가능했을 텐데 그때는 돈의 규모를 잘 몰랐다고 한다.


“1층은 공동카페, 2층은 숙소, 3층은 공유사무실. 각 단체들이 들어와 함께 일하고 회계를 공유할 수 있는 구조인 거죠. 하나의 단체가 회계와 사업을 다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아예 모여서 함께 하자는 거죠.”


활동가의 자산은 결국 ‘사람과의 연결’이라는 그에게 지역사회와 공동체는 삶의 기반이다. 그는 요즘 땅을 알아보며 꿈을 소문내는 중이다. 그의 꿈이 이루어지도록 소문이 멀리 널리 퍼지면 좋겠다. 자기 것을 채우지 않고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며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길을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 그의 말처럼, 인생은 결국 ‘즐기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삶이 어떤 이들에게는 새로운 나침반이 되길 바란다.




인터뷰어 : 정지미

좋아하는 일,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늦게까지 하며, 사람과 세상에 마음을 열어두고 살고 싶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따라 사회, 경제, 환경 영역에서 민관이 협력하여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가도록 연결하는 일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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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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