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응시하고 사유하고 움직이는,
이윤채령 대구여성영화제 활동가
이윤채령 활동가를 생각하면, 영화 <소공녀>가 떠오르고는 했다.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좋아하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인공 미소와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 활동가는 자신이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고, 틈을 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미소와 다르다. 사적인 취향을 바탕으로 공적인 공간을 확장해 가는 이윤채령 활동가는 부드럽게 경계를 넘는다. 그 이야기를 청해 듣고 싶었다.
- 대구여성영화제에서 활동을 하기까지 많은 곳을 거쳐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채령 활동가님, 어디서 나타나신 건가요?
활동이라는 단어를 대학교 입학 후에 접하게 되었어요. 활동가라는 직업이라거나 NGO라거나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 잘 몰랐고. 기회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대학을 다녔던 시기에 박근혜 탄핵이나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평소에 정치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때부터 내가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고 일련의 사건들이 저에게는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구나 생각했어요.
비슷한 시기에 다니고 있던 대학에서 일이 있기도 했는데, 당시 재단의 문제에 대해 학교의 의사결정과정이 학생들에게 민주적이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그걸 계기로 학내에서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을 구성하려는 학생들이 모였고 저도 그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앞에서 발언을 하거나 대표성을 가지는 사람이 되었고, 토론회나 여러 자리에서 시민단체나 정당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정치적 의견을 말하면서 생계 노동을 갈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서, 저도 활동이라는 걸 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활짝 웃고 있는 이윤채령 활동가
-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먼저 있었군요. 혹시 처음 일했던 단체가 어디였나요?
대구시에서 하는 청년활동가 지원사업을 통해서 ‘대구풀뿌리여성연대’라는 단체에 10개월 정도 상근을 하게 되었는데, 2018년에 여기서 제 7회 대구여성영화제에도 처음 참여하게 되었어요. 활동가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내가 특히 관심 가는 분야가 뭘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소수자성이나 경계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건들에 예민한 편이었고, 당시 탈식민주의나 급진적인 사회 변화에 관한 이론들에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주여성인권센터에 지원했고, 그곳에서 상담원을 거쳐 사무처 일을 했습니다. 원치 않게 단체가 사라지게 되어서 일을 그만두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활동이라는 것이 활동가들이 노력하더라도 지속할 수 없게 된다는 것에 좌절을 했어요. 그 이후에도 민주노총 산하의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 조직국장으로 2년 정도 일을 하거나 크고 작은 단체들을 옮겨 다녔어요. 그 과정에서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계속 쌓이는 느낌이 들어서 공부를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계명대 여성학과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엄청난 우연으로 제가 입학하던 23년도부터 그동안 대구풀뿌리여성연대에서 주관해온던 대구여성영화제가 계명대 여성학연구소 주관으로 바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제가 영화제에 합류하게 되었네요. 굵직하게 정리하면 이 정도인 듯 해요.

2019년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상근 당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이 대응하던 직장내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피켓팅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 상근 당시 교육청 앞에서 현안 해결과 면담을 요구하며 함께 농성했다.
- 경험이 하나하나 더 궁금해져요. 긴 역사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조금 더 시간을 돌려서, 어린이/청소년 시절의 채령 님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렸을 때는 성격 면에서 지금이랑 엄청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되게 내성적이고 엄청 에너지를 안으로 모으는 그런 타입인데 부모님 말씀 들어보면 어릴 땐 엄청 활달하고 외향적이고 뭔가 나서서 발표하고 이런 걸 좋아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울렁증도 있고 뒤에서 글 쓰는 게 좋고 그렇거든요. 불평불만은 많은 편이었던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저항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누구나 하는 것들도 ‘왜 그렇게 해야 하지?’ 이런 식으로 충분히 제 안에서 설명이 안 되면 납득을 못 했어요.
사실 원가족이 아버지의 위계가 강하고 남동생과 저에 대한 차별도 있었고, 여자는 이래야 되고 남자는 이래야 되고 이런 부분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걸 잘 흘려보내지 못했어요. 가부장제나 페미니즘 이런 단어를 모르니까 그냥 제가 가족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의 말이나 태도가 상처가 되는 경우가 있어서, 나는 어른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 동네가 싫고 우리 집이 싫고 우리 학교가 싫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 무언가 건드려지는 것이 계속 있어 왔는데, 설명할 언어가 주어지지 않았네요.
어릴 때부터 가난에 대해서 무척이나 크게 감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계급이라는 것, 이후에 어떤 존재의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후에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의식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관계맺기 과정에서 누군가를 편안하게 느끼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것에 저는 개인적으로 비슷한 계급 감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도대체 이게 뭔지는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가 대학 강의실에서 툭툭 들리는 단어들,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찾아본 내용들을 통해서 언어를 얻게 되었어요.

2021년 대구여성영화제에서 모더레이터로 활동하는 모습
- 대구여성영화제 이야기를 이어서 해볼게요.
채령 님에게 영화제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대구에서 여성영화제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일단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 될 것 같은데, 제 기억에 처음 본 영화는 중학교 때인가... 어떤 멋진 여성 과학선생님이 학기말 즈음 자율활동 시간 같은 때에 틀어 준 <가타카>라는 영화였어요. 굉장히 큰 충격과 감동?을 느꼈고, 영화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데, 영화를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수능이 끝나고 영화관이라는 곳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경주에 영화관이 하나밖에 없기도 했고, 부모님도 영화관 가는 걸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으셔서 대학 합격을 하고 나서 한번 경험해 보러 갔죠. 그때 너무 재미없는 한국 영화를 봐서 영화는 기억이 안 나는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이 무척 매력적이어서 대학을 다니는 내내 이런저런 영화들을 보면서 취향을 많이 찾았던 거 같아요. 당시에 동성아트홀이라는 독립영화상영관도 자주 가고, 서울에는 그런 곳이 많으니까 특정한 영화관에 가기 위해서 서울에 가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영화를 엄청 좋아하게 되었어요.
영화를 볼 때 용을 많이 쓰면서 보는 스타일인데, 제가 원하는 스토리나 메시지가 있어서 상업영화나 블록버스터보다는 인물들을 집요하게 따라가면서 고민하고 마음 졸이고 엄청 피곤해지는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듯 해요. 유튜브 컨텐츠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거랑 다르게 주인공의 서사를 통해서 내가 살지 않는 삶에 대해 이입해 보고, 문자 매체의 이야기 보다 더 직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매체가 영화라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 작은 창문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이 생각이 여성영화제에서 활동하시는 데 바탕이 되었군요.
대자보를 멋지게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석과 의미부여, 파급력의 측면에서 정말 훌륭한 영화 한 편을 보면 설득이 되지 않을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영화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저에게 여성영화제를 하는 것의 의미는 예술 그 자체로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문화운동의 차원에서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세상이 너무 불평등하다는 것. 지금이 이전보다 더 차별적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혐오와 백래시에 빈번히 노출되고, 가해와 피해가 뒤섞이는 복잡한 일들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무언가에 의해 상처받는 존재가 있다, 이런 구조/폭력에 지워지지 않으려 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어떻게 서로의 곁이 될지 고민해보자... 등등 특히 여성영화제에서는 성평등에 대한 무척 많은 메시지들, 그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는 점에서 운동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 저도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장이 열리고,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제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존재로서의 가치랄까요.
항상 성황리에 열리고, 관객이 늘 많이 오고 그러면 당연히 좋겠지만 비서울지역의 여성영화제가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제를 유지한다는 건 그 지역에서 영화제를 통해 여성 의제에 대해 계속 드러내는 것에 깊게 열정을 쏟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그리고 여성영화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2024년 대구여성영화제에서 모더레이터로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모습
- 지금 대구여성영화제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가요?
영화제가 여성학 연구소에 속해 있어서 독자적 체계를 만들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직책이 있지만 사실 되게 많은 일들을 그 경계를 넘어가면서 하고 있어요. 그중에서 제 메인 업무는 프로그래머인데, 영화제가 열리는 게 10월 말~ 11월 초라 초여름부터 다른 지역의 여성영화제를 돌아다니면서 상영작과 추천작을 보면서 참고를 하기도 하고, 평소에 독립영화관에 가서 봤던 영화들 가운데 다시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영화도 고려를 해요. 그리고 6~7월 사이에는 작품을 공모해요.
사실 영화 산업의 구조가 자본에 투자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유명 감독들이 아니면 장편 영화를 제작하기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영화계에 입문하는 신진 여성 감독들은 단편 영화들을 만들어서 출품을 하고 수상을 하면 경력이 되어서 투자를 받아서 또 잠깐 영화를 찍고 이런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많이 상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작년, 재작년에도 200편 넘게 들어왔는데, 보통 그렇게 처음 영화 제작에 뛰어든 분들이 제작한 영화들이 공모가 돼요. 다 같이 하는 예비 심사나 2차 심사가 있지만 제가 프로그래머니까 심사에 관여를 많이 하게 돼죠. 어떤 의제들을 다룰지 고민하는 거니까,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 밖에 시간표가 나오면 감독님들, 배우님들한테 연락을 하는 것도 제가 연락을 담당하고 있어요. 영화제 당일에는 관객과의 대화에 들어가기도 하고요.
-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까 영화제가 있기까지 채령 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좀 그려지네요. 말씀하신 것 중에 공모를 하는 부분이 특히 의미 있게 느껴져요.
약간 부담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아 있어요. 물론 200편을 혼자서 다 보고 심사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영화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연출이나 연기를 했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뭔가 좀 더 영화가 전공분야였으면 내가 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도 가끔 해요. 하지만 저희 여성영화제에서 단순히 기술적/미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를 선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학 전공자로서 제가 프로그램 선택에 잘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제에 전문가 자문위원들께서 계시기 때문에 상영작 선택에 관해 이런저런 조언과 피드백을 들을 수 있기도 하니 뭐랄까 안전장치가 있기도 하고요.
- 사실 제가 가까이서 봤던 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모습이었는데 어떤 진행자보다도 상대를 잘 드러나게 해주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도록 하는 진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 왔어요. 혹시 이런 영화제 진행을 할 때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남겨두면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영화제를 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참고가 될 것 같아요.
관객과의 대화는 말그대로 그 영화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이랑 서로 회담이나 질문을 나누는 자리니까, 모더레이터가 개입을 적게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진행을 하기 전에는 일단 영화를 여러 번 보고, 그 영화를 일차적으로 내가 어떤 식으로 감상했는지를 한번 정리를 해봐요. 그러다 보면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부분을 발견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서로 생각의 차이가 나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 부분이 드러나는 질문은 반드시 넣으려고 해요. 영화에 대한 부연설명이나 기획 배경이나 이런 이야기를 잘 안하려고 하고, 캐릭터에 대한 질문이나 제작 에피소드를 물어보기도 하고, 독특한 도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제가 두세 개 정도 질문을 하고 객석에서 질문을 받는데, 혹시 나올 수 있는 당황스러운 질문도 미리 대비하는 편이에요. 제일 중요한 건 게스트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 채령 님이 생각하는 ‘여성영화’란 무엇인가요?
다른 문화 예술계도 마찬가지지만 영화 산업 같은 경우는 제작에 특히나 많은 비용이 들어요. 여성 창작자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기에는 그런 허들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 제작자, 연출자, 배우 등 스탭들이 여성으로 구성된 것도 엄청나게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 감독과 여성 연출진이 만든 영화가 반드시 여성 영화인 것은 아니고, 남성이 만들었다고 해서 페미니즘 영화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상영작을 선정할 때 내용 면에서 다양한 생애 서사를 가진 여성들의 삶을 드러내거나, 성차별에 대해서 노동이나 계급, 주거, 폭력 등 여성이 겪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드러내는 영화들을 골고루 선정하기 위해 노력해요. 여성영화라는 것이 무궁무진한 주제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대구MBC와의 인터뷰에서 대구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답변하였다.
-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영화제를 만들어가는 프로그래머로서 인터뷰를 읽는 분들에게 여성 영화 세 편을 추천해 주세요!
일단 추천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볼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ott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을 골랐어요. 첫 번째 영화는 유은정 감독님의 <밤의 문이 열린다>인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고요하게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시선과 서사를 잔잔하게 잘 담아내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밤의 문이 열린다>는 주인공이 내적 변화를 겪는 과정이 소란스럽지 않고 단단하게 느껴지는 영화였고, 당시에 영화관에서 두 번 관람했는데 최근에 다시 한 번 보면서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애플티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웃음).
두 번째 영화는 대구의 여성 감독님인 김현정 감독님이 작년에 개봉한 장편인데 <최소한의 선의>라고 각본은 따로 있고 감독님이 연출을 하신 영화가 있어요. 청소년의 임신과 그 사건을 중심으로 주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영화예요. 단편과 장편 전작으로도 드러나는데, 감독님의 연출방식이 인물의 내면 서사에 집중하고 성급하게 이야기를 휘몰아치려고 한다거나 자극적인 요소를 일부러 넣으려고 하지도 않고, 나 또는 내 주변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얼굴의 여성 인물들을 그려내는 것 같아요. 왓챠 등 많은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이고요.
세 번째로는 해외 영화도 하나 추천을 해 볼게요. 셀린 시아마의 영화들을 다 좋아하는데 그중 저의 최애가 <걸후드>거든요. 이 영화는 흑인 여성 청소년들의 이야기인데 앞에서 추천한 두 영화들에 비해 신나는 면이 있는 영화예요. 일단 여성의 우정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너무 좋았고 여성들의 단편적이지 않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내면의 서사가 잘 드러나서 되게 재밌고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들도 취향이예요. 이것도 아마 왓챠에서 볼 수 있을 거예요.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들이 시청하실 수 있는 영화 3편을 추천했는데, 정말 좋은 영화들이 많아서 고르는게 힘들었어요. 추가적으로 영화 추천을 좀 더 할 수 있는 지면이 있다면, 작년에 한국에 개봉했고 여성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박수남, 박마의 감독의 <되살아나는 목소리>, 그리고 제가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기 시작한 2023년에 봤던 영화 중에 사라 폴리 감독의 <위민토킹>도 추천해봅니다.
올해 대구여성영화제에서도 멋진 장/단편 영화들을 상영할 예정이니 여성영화에 관심이 있는 지역 관객들이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좌측부터 <밤의 문이 열린다>, <최소한의 선의>, <걸후드> 포스터
- 지금까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음으로는 채령 님을 더 알 수 있는 질문들을 나눠볼게요.
최근에 행복했던 순간을 한번 떠올려보시고 말해주실 수 있나요.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업은 대학원생인데요,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석사 학위 논문을 썼는데 아직 심사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일단은 완성을 해서 얼마 전에 제출을 했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긴 글을 써 본게 처음이어서 부끄럽고 이상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이 과정에서 중도 하차하지 않고 마무리를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좀 대견했어요.
제출한 그 날은 저녁에 가까운 친구들이랑 좋아하는 술집에 가서 오랜만에 맛있는 술을 느긋하게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평소에 저희가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우리의 우정에 대해서 걱정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걸 돌아가면서 꺼내는 상황이 만들어졌거든요. 말하면서 많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다가 앞으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 그랬는데 논문 제출이라는 숙제를 한 날이기도 하고 관계에 있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가진 그런 날이 된 거죠. 집에 오는 길이 되게 행복했어요. 평소에 잠에 잘 못드는데, 그날은 충족감이 들었어요.
- 저도 같이 기뻐하게 되네요. 쉼이 필요한 순간에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물리적으로 소진되면 집을 치우거나 집에서만 쉬면서 회복하는 편인데, 뭔가 마음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소진된다고 느낄 때는 영화관에 가거나 소설책을 보거나 이런 식으로 다른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인 것 같아요.
- 채령 님을 소개하는 단어에는 이야기가 들어가려나요. 세 단어로 스스로를 표현한다면요?
인터뷰 질문 중에 이게 가장 어렵네요 >< 나루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평소에 깊게 생각하지 않다가 저를 좀 새삼스레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 것 같아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머뭇거리는 사람. 다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정도로 표현해볼게요.
- 마지막 질문인데요, 채령 님의 꿈이 궁금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뭘 이뤄야지, 뭐가 돼야지 이런 생각을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기억이 나는 시점부터는 이런 건 안 하고 싶고, 이런 사람은 안 되고 싶고 이런 식으로 되기 싫은 것에 대한 리스트를 추려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학 졸업하고 활동가로 취직했을 때도 그렇고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도 그렇고 영화제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렇고 그때그때 무언가가 흘러왔을 때 이걸 할지 말지 고민했지, 계획해서 해온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거창하게 바라는 게 있다기보다는 일단 논문을 쓰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이뤘고, 영화제 지속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이제 3년차에 접어들었으니 어느정도 실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은 친구들과 같이 공동으로 꿈꾸는 여성주의 문화 운동 공간이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를 함께 하고 있어서 그게 또 저의 작은 목표이고 꿈이 된 것 같아요.
움직이는 세계 안에서 나만의 방향을 잃지 않아 온 사람, 그 방향을 잡기 위해 이야기를 따라 온 사람. 오래 바라보고, 말 걸고, 세상과 연결하는 사람. 이윤채령 활동가의 삶에는 수많은 각주가 달려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면 채령 활동가가 생각날 것 같다. 조근조근 오래오래 이야기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뷰어 : 나루 (전나경)
엉켜있는 곳에서 기운이 솟는 인간동물. 이상하고 미친 존재들을 특별히 애정한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응시하고 사유하고 움직이는,
이윤채령 대구여성영화제 활동가
이윤채령 활동가를 생각하면, 영화 <소공녀>가 떠오르고는 했다.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하고, 좋아하는 감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인공 미소와 닮은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이 활동가는 자신이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확장하고, 틈을 내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미소와 다르다. 사적인 취향을 바탕으로 공적인 공간을 확장해 가는 이윤채령 활동가는 부드럽게 경계를 넘는다. 그 이야기를 청해 듣고 싶었다.
- 대구여성영화제에서 활동을 하기까지 많은 곳을 거쳐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채령 활동가님, 어디서 나타나신 건가요?
활동이라는 단어를 대학교 입학 후에 접하게 되었어요. 활동가라는 직업이라거나 NGO라거나 정치적인 것에 대해서 잘 몰랐고. 기회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대학을 다녔던 시기에 박근혜 탄핵이나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평소에 정치 이야기를 잘 안 하는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이야기를 많이 했거든요. 그때부터 내가 이런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고 일련의 사건들이 저에게는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구나 생각했어요.
비슷한 시기에 다니고 있던 대학에서 일이 있기도 했는데, 당시 재단의 문제에 대해 학교의 의사결정과정이 학생들에게 민주적이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었어요. 그걸 계기로 학내에서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을 구성하려는 학생들이 모였고 저도 그 활동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앞에서 발언을 하거나 대표성을 가지는 사람이 되었고, 토론회나 여러 자리에서 시민단체나 정당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정치적 의견을 말하면서 생계 노동을 갈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서, 저도 활동이라는 걸 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활짝 웃고 있는 이윤채령 활동가
-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먼저 있었군요. 혹시 처음 일했던 단체가 어디였나요?
대구시에서 하는 청년활동가 지원사업을 통해서 ‘대구풀뿌리여성연대’라는 단체에 10개월 정도 상근을 하게 되었는데, 2018년에 여기서 제 7회 대구여성영화제에도 처음 참여하게 되었어요. 활동가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기도 했고, 내가 특히 관심 가는 분야가 뭘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소수자성이나 경계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건들에 예민한 편이었고, 당시 탈식민주의나 급진적인 사회 변화에 관한 이론들에 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주여성인권센터에 지원했고, 그곳에서 상담원을 거쳐 사무처 일을 했습니다. 원치 않게 단체가 사라지게 되어서 일을 그만두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활동이라는 것이 활동가들이 노력하더라도 지속할 수 없게 된다는 것에 좌절을 했어요. 그 이후에도 민주노총 산하의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에서 조직국장으로 2년 정도 일을 하거나 크고 작은 단체들을 옮겨 다녔어요. 그 과정에서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계속 쌓이는 느낌이 들어서 공부를 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계명대 여성학과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엄청난 우연으로 제가 입학하던 23년도부터 그동안 대구풀뿌리여성연대에서 주관해온던 대구여성영화제가 계명대 여성학연구소 주관으로 바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제가 영화제에 합류하게 되었네요. 굵직하게 정리하면 이 정도인 듯 해요.
2019년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상근 당시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이 대응하던 직장내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피켓팅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대구지부 상근 당시 교육청 앞에서 현안 해결과 면담을 요구하며 함께 농성했다.
- 경험이 하나하나 더 궁금해져요. 긴 역사를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조금 더 시간을 돌려서, 어린이/청소년 시절의 채령 님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렸을 때는 성격 면에서 지금이랑 엄청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되게 내성적이고 엄청 에너지를 안으로 모으는 그런 타입인데 부모님 말씀 들어보면 어릴 땐 엄청 활달하고 외향적이고 뭔가 나서서 발표하고 이런 걸 좋아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울렁증도 있고 뒤에서 글 쓰는 게 좋고 그렇거든요. 불평불만은 많은 편이었던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저항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누구나 하는 것들도 ‘왜 그렇게 해야 하지?’ 이런 식으로 충분히 제 안에서 설명이 안 되면 납득을 못 했어요.
사실 원가족이 아버지의 위계가 강하고 남동생과 저에 대한 차별도 있었고, 여자는 이래야 되고 남자는 이래야 되고 이런 부분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걸 잘 흘려보내지 못했어요. 가부장제나 페미니즘 이런 단어를 모르니까 그냥 제가 가족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친구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의 말이나 태도가 상처가 되는 경우가 있어서, 나는 어른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 동네가 싫고 우리 집이 싫고 우리 학교가 싫고 더 넓은 세상으로 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죠.
- 무언가 건드려지는 것이 계속 있어 왔는데, 설명할 언어가 주어지지 않았네요.
어릴 때부터 가난에 대해서 무척이나 크게 감각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계급이라는 것, 이후에 어떤 존재의 삶의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후에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의식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관계맺기 과정에서 누군가를 편안하게 느끼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것에 저는 개인적으로 비슷한 계급 감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도대체 이게 뭔지는 잘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가 대학 강의실에서 툭툭 들리는 단어들,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찾아본 내용들을 통해서 언어를 얻게 되었어요.
2021년 대구여성영화제에서 모더레이터로 활동하는 모습
- 대구여성영화제 이야기를 이어서 해볼게요.
채령 님에게 영화제를 만든다는 것, 그리고 대구에서 여성영화제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일단 이 이야기를 먼저 해야 될 것 같은데, 제 기억에 처음 본 영화는 중학교 때인가... 어떤 멋진 여성 과학선생님이 학기말 즈음 자율활동 시간 같은 때에 틀어 준 <가타카>라는 영화였어요. 굉장히 큰 충격과 감동?을 느꼈고, 영화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데, 영화를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잘 몰랐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수능이 끝나고 영화관이라는 곳에 처음 가보게 되었습니다. 경주에 영화관이 하나밖에 없기도 했고, 부모님도 영화관 가는 걸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으셔서 대학 합격을 하고 나서 한번 경험해 보러 갔죠. 그때 너무 재미없는 한국 영화를 봐서 영화는 기억이 안 나는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경험이 무척 매력적이어서 대학을 다니는 내내 이런저런 영화들을 보면서 취향을 많이 찾았던 거 같아요. 당시에 동성아트홀이라는 독립영화상영관도 자주 가고, 서울에는 그런 곳이 많으니까 특정한 영화관에 가기 위해서 서울에 가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영화를 엄청 좋아하게 되었어요.
영화를 볼 때 용을 많이 쓰면서 보는 스타일인데, 제가 원하는 스토리나 메시지가 있어서 상업영화나 블록버스터보다는 인물들을 집요하게 따라가면서 고민하고 마음 졸이고 엄청 피곤해지는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듯 해요. 유튜브 컨텐츠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거랑 다르게 주인공의 서사를 통해서 내가 살지 않는 삶에 대해 이입해 보고, 문자 매체의 이야기 보다 더 직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매체가 영화라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 작은 창문 같은 이미지가 떠올라요. 이 생각이 여성영화제에서 활동하시는 데 바탕이 되었군요.
대자보를 멋지게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석과 의미부여, 파급력의 측면에서 정말 훌륭한 영화 한 편을 보면 설득이 되지 않을까, 그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영화라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그러니까 저에게 여성영화제를 하는 것의 의미는 예술 그 자체로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문화운동의 차원에서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세상이 너무 불평등하다는 것. 지금이 이전보다 더 차별적이라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혐오와 백래시에 빈번히 노출되고, 가해와 피해가 뒤섞이는 복잡한 일들을 일상적으로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무언가에 의해 상처받는 존재가 있다, 이런 구조/폭력에 지워지지 않으려 하는 목소리들이 있다, 어떻게 서로의 곁이 될지 고민해보자... 등등 특히 여성영화제에서는 성평등에 대한 무척 많은 메시지들, 그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을 만든다는 점에서 운동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 저도 영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장이 열리고, 체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영화제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의미도 있는 것 같아요. 존재로서의 가치랄까요.
항상 성황리에 열리고, 관객이 늘 많이 오고 그러면 당연히 좋겠지만 비서울지역의 여성영화제가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제를 유지한다는 건 그 지역에서 영화제를 통해 여성 의제에 대해 계속 드러내는 것에 깊게 열정을 쏟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그리고 여성영화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나 싶어요.
2024년 대구여성영화제에서 모더레이터로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모습
- 지금 대구여성영화제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신가요?
영화제가 여성학 연구소에 속해 있어서 독자적 체계를 만들기가 어려운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직책이 있지만 사실 되게 많은 일들을 그 경계를 넘어가면서 하고 있어요. 그중에서 제 메인 업무는 프로그래머인데, 영화제가 열리는 게 10월 말~ 11월 초라 초여름부터 다른 지역의 여성영화제를 돌아다니면서 상영작과 추천작을 보면서 참고를 하기도 하고, 평소에 독립영화관에 가서 봤던 영화들 가운데 다시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영화도 고려를 해요. 그리고 6~7월 사이에는 작품을 공모해요.
사실 영화 산업의 구조가 자본에 투자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유명 감독들이 아니면 장편 영화를 제작하기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영화계에 입문하는 신진 여성 감독들은 단편 영화들을 만들어서 출품을 하고 수상을 하면 경력이 되어서 투자를 받아서 또 잠깐 영화를 찍고 이런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여성 감독들의 작품을 많이 상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작년, 재작년에도 200편 넘게 들어왔는데, 보통 그렇게 처음 영화 제작에 뛰어든 분들이 제작한 영화들이 공모가 돼요. 다 같이 하는 예비 심사나 2차 심사가 있지만 제가 프로그래머니까 심사에 관여를 많이 하게 돼죠. 어떤 의제들을 다룰지 고민하는 거니까, 소프트웨어를 채우는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그 밖에 시간표가 나오면 감독님들, 배우님들한테 연락을 하는 것도 제가 연락을 담당하고 있어요. 영화제 당일에는 관객과의 대화에 들어가기도 하고요.
- 이렇게 이야기를 들으니까 영화제가 있기까지 채령 님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좀 그려지네요. 말씀하신 것 중에 공모를 하는 부분이 특히 의미 있게 느껴져요.
약간 부담스러운 느낌도 없지 않아 있어요. 물론 200편을 혼자서 다 보고 심사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영화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연출이나 연기를 했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뭔가 좀 더 영화가 전공분야였으면 내가 좀 더 좋은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도 가끔 해요. 하지만 저희 여성영화제에서 단순히 기술적/미학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를 선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여성학 전공자로서 제가 프로그램 선택에 잘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제에 전문가 자문위원들께서 계시기 때문에 상영작 선택에 관해 이런저런 조언과 피드백을 들을 수 있기도 하니 뭐랄까 안전장치가 있기도 하고요.
- 사실 제가 가까이서 봤던 건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는 모습이었는데 어떤 진행자보다도 상대를 잘 드러나게 해주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오도록 하는 진행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 왔어요. 혹시 이런 영화제 진행을 할 때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남겨두면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영화제를 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큰 참고가 될 것 같아요.
관객과의 대화는 말그대로 그 영화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 영화를 감상한 관객들이랑 서로 회담이나 질문을 나누는 자리니까, 모더레이터가 개입을 적게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에요. 진행을 하기 전에는 일단 영화를 여러 번 보고, 그 영화를 일차적으로 내가 어떤 식으로 감상했는지를 한번 정리를 해봐요. 그러다 보면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부분을 발견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 서로 생각의 차이가 나는 것이 재미있어서 그 부분이 드러나는 질문은 반드시 넣으려고 해요. 영화에 대한 부연설명이나 기획 배경이나 이런 이야기를 잘 안하려고 하고, 캐릭터에 대한 질문이나 제작 에피소드를 물어보기도 하고, 독특한 도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제가 두세 개 정도 질문을 하고 객석에서 질문을 받는데, 혹시 나올 수 있는 당황스러운 질문도 미리 대비하는 편이에요. 제일 중요한 건 게스트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 채령 님이 생각하는 ‘여성영화’란 무엇인가요?
다른 문화 예술계도 마찬가지지만 영화 산업 같은 경우는 제작에 특히나 많은 비용이 들어요. 여성 창작자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기에는 그런 허들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 제작자, 연출자, 배우 등 스탭들이 여성으로 구성된 것도 엄청나게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성 감독과 여성 연출진이 만든 영화가 반드시 여성 영화인 것은 아니고, 남성이 만들었다고 해서 페미니즘 영화가 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상영작을 선정할 때 내용 면에서 다양한 생애 서사를 가진 여성들의 삶을 드러내거나, 성차별에 대해서 노동이나 계급, 주거, 폭력 등 여성이 겪는 다양한 삶의 경험을 드러내는 영화들을 골고루 선정하기 위해 노력해요. 여성영화라는 것이 무궁무진한 주제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대구MBC와의 인터뷰에서 대구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답변하였다.
-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여성영화제를 만들어가는 프로그래머로서 인터뷰를 읽는 분들에게 여성 영화 세 편을 추천해 주세요!
일단 추천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볼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ott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을 골랐어요. 첫 번째 영화는 유은정 감독님의 <밤의 문이 열린다>인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고요하게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시선과 서사를 잔잔하게 잘 담아내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밤의 문이 열린다>는 주인공이 내적 변화를 겪는 과정이 소란스럽지 않고 단단하게 느껴지는 영화였고, 당시에 영화관에서 두 번 관람했는데 최근에 다시 한 번 보면서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애플티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웃음).
두 번째 영화는 대구의 여성 감독님인 김현정 감독님이 작년에 개봉한 장편인데 <최소한의 선의>라고 각본은 따로 있고 감독님이 연출을 하신 영화가 있어요. 청소년의 임신과 그 사건을 중심으로 주변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영화예요. 단편과 장편 전작으로도 드러나는데, 감독님의 연출방식이 인물의 내면 서사에 집중하고 성급하게 이야기를 휘몰아치려고 한다거나 자극적인 요소를 일부러 넣으려고 하지도 않고, 나 또는 내 주변 어딘가에서 본 것 같은 얼굴의 여성 인물들을 그려내는 것 같아요. 왓챠 등 많은 플랫폼에서 볼 수 있는 영화이고요.
세 번째로는 해외 영화도 하나 추천을 해 볼게요. 셀린 시아마의 영화들을 다 좋아하는데 그중 저의 최애가 <걸후드>거든요. 이 영화는 흑인 여성 청소년들의 이야기인데 앞에서 추천한 두 영화들에 비해 신나는 면이 있는 영화예요. 일단 여성의 우정에 대해 다루고 있어서 너무 좋았고 여성들의 단편적이지 않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내면의 서사가 잘 드러나서 되게 재밌고 영화에서 나오는 음악들도 취향이예요. 이것도 아마 왓챠에서 볼 수 있을 거예요.
인터뷰를 읽으시는 분들이 시청하실 수 있는 영화 3편을 추천했는데, 정말 좋은 영화들이 많아서 고르는게 힘들었어요. 추가적으로 영화 추천을 좀 더 할 수 있는 지면이 있다면, 작년에 한국에 개봉했고 여성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박수남, 박마의 감독의 <되살아나는 목소리>, 그리고 제가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기 시작한 2023년에 봤던 영화 중에 사라 폴리 감독의 <위민토킹>도 추천해봅니다.
올해 대구여성영화제에서도 멋진 장/단편 영화들을 상영할 예정이니 여성영화에 관심이 있는 지역 관객들이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좌측부터 <밤의 문이 열린다>, <최소한의 선의>, <걸후드> 포스터
- 지금까지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다음으로는 채령 님을 더 알 수 있는 질문들을 나눠볼게요.
최근에 행복했던 순간을 한번 떠올려보시고 말해주실 수 있나요.
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본업은 대학원생인데요,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석사 학위 논문을 썼는데 아직 심사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일단은 완성을 해서 얼마 전에 제출을 했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긴 글을 써 본게 처음이어서 부끄럽고 이상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이 과정에서 중도 하차하지 않고 마무리를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가 좀 대견했어요.
제출한 그 날은 저녁에 가까운 친구들이랑 좋아하는 술집에 가서 오랜만에 맛있는 술을 느긋하게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평소에 저희가 많은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우리의 우정에 대해서 걱정했던 순간이 있었다는 걸 돌아가면서 꺼내는 상황이 만들어졌거든요. 말하면서 많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다가 앞으로 이야기를 더 많이 하자, 그랬는데 논문 제출이라는 숙제를 한 날이기도 하고 관계에 있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가진 그런 날이 된 거죠. 집에 오는 길이 되게 행복했어요. 평소에 잠에 잘 못드는데, 그날은 충족감이 들었어요.
- 저도 같이 기뻐하게 되네요. 쉼이 필요한 순간에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해요.
물리적으로 소진되면 집을 치우거나 집에서만 쉬면서 회복하는 편인데, 뭔가 마음 속에서 해소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소진된다고 느낄 때는 영화관에 가거나 소설책을 보거나 이런 식으로 다른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인 것 같아요.
- 채령 님을 소개하는 단어에는 이야기가 들어가려나요. 세 단어로 스스로를 표현한다면요?
인터뷰 질문 중에 이게 가장 어렵네요 >< 나루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평소에 깊게 생각하지 않다가 저를 좀 새삼스레 낯선 시선으로 바라본 것 같아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 머뭇거리는 사람. 다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정도로 표현해볼게요.
- 마지막 질문인데요, 채령 님의 꿈이 궁금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뭘 이뤄야지, 뭐가 돼야지 이런 생각을 잘 안 했던 것 같아요. 기억이 나는 시점부터는 이런 건 안 하고 싶고, 이런 사람은 안 되고 싶고 이런 식으로 되기 싫은 것에 대한 리스트를 추려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대학 졸업하고 활동가로 취직했을 때도 그렇고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도 그렇고 영화제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그렇고 그때그때 무언가가 흘러왔을 때 이걸 할지 말지 고민했지, 계획해서 해온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거창하게 바라는 게 있다기보다는 일단 논문을 쓰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이뤘고, 영화제 지속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이제 3년차에 접어들었으니 어느정도 실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은 친구들과 같이 공동으로 꿈꾸는 여성주의 문화 운동 공간이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를 함께 하고 있어서 그게 또 저의 작은 목표이고 꿈이 된 것 같아요.
움직이는 세계 안에서 나만의 방향을 잃지 않아 온 사람, 그 방향을 잡기 위해 이야기를 따라 온 사람. 오래 바라보고, 말 걸고, 세상과 연결하는 사람. 이윤채령 활동가의 삶에는 수많은 각주가 달려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면 채령 활동가가 생각날 것 같다. 조근조근 오래오래 이야기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