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을 하면서 구석에서 바쁜 사람,
홍동밝맑도서관 김세빈 활동가
농촌의 여름은 바쁘다. 모내기를 하고, 작물을 심고, 풀을 뽑고, 순식간에 자라는 것들과 함께 종일 움직여야 하는 계절. 구석구석 조용히 바쁜 동네를 보며 나는 어디선가 웅크리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고랑과 고랑 사이에 낮게 웅크려 풀을 뽑는 사람, 기계가 닿지 않은 곳에 허리를 굽혀 손모를 내는 사람, 곧게 자란 작물을 옆에서 땀 흘리며 수확하는 사람.
세빈 역시 그런 농촌 사람들의 모습과 닮은 사람이다. 구석에서 바쁜 사람. 어디선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사람. 충남 홍성, 홍동 마을에 있는 홍동밝맑도서관에서 7년째 사서를 하고 있는 세빈을 만나 보았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평생 농촌에서만 살았어요. 지금도 농촌에 살고 있고요. 어쩌다보니 사서가 되어 홍동밝맑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농업 농촌 문제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Q. 저는 세빈 을 ‘구석에서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무언가 많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최근에는 대학원 논문 심사도 있었고요. 요즘도 작은 책들을 만들고 있나요? 매일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갈 것 같아요. 세빈의 하루 일상이 궁금합니다.
네, 바쁩니다.(웃음) 요즘은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까 운동을 좀 해야겠다 싶어서요. 자전거로 옆 마을 농장에 출근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따라 갔다가 돌아와요. 5시 반쯤 일어나서 6시 반에 출발하면 7시 반쯤 집에 도착하고, 씻고 출근해서 도서관에 오면 8시 반쯤 돼요.
이때부터 도서관을 여는 10시까지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노래 틀어놓고 오늘 어떤 일을 할지 생각도 하고 멍도 때리고 책을 보거나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요.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간에 되도록 책을 보려고 하긴 해요. 제가 도서관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 일을 알려주시던 선생님이 하루에 2시간은 책을 읽어야 도서관에서 일 할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10시부터는 도서관 일을 시작해요. 화장실 청소 하는 것을 가장 먼저 하고 그 다음은 책 정리나 도서관에 필요한 일들을 하죠. 저희 도서관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어서 일이 그렇게 많진 않아요. 그래서 나머지 시간에는 마을에 필요한 일이나 부족한 경제활동을 위한 일들을 받아서 합니다. 도서관을 비울 수는 없으니까 웹진이나 자료집 만들기 교정교열 보는 일을 해요.

Q. 지금 살고 있는 홍동 마을에 있는 풀무학교를 졸업 하셨지요. 학교를 다닐 때부터 마을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했나요? 마을에 남게 된 계기와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 우연의 일치였던 것 같은데요.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사서가 될 거야’라거나 ‘마을에 남아 도서관에서 일해야지’같은 명확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진 않았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간은 여행도 가고 다른 지역에서 살기도 했고요. 제가 홍성에 오기 전에 부천에서 잠깐 지냈는데 그게 저의 첫 도시 생활이었어요. 그곳에 살면서 저는 도시생활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막연히 지역에 내려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우연히 홍성에 살고 있던 친구네 놀러왔어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살게 됐어요. 단순하게 시작 한 거죠.
처음에는 친구가 일하고 있던 ‘협업농장’에서도 같이 일했어요. 거기서 정민철 선생님이 농촌에 있는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거니까 지역과 농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도서관 일을 하기 전에 계셨던 선생님들은 직접 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지역 도서관이기 때문에 책만 아는 게 아니라 농업 농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요. 저도 도서관에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업을 하고 계시는 분들일 테니까 농사 짓는 것도 알아야 하고 농촌에 대한 공부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처음 도서관 일을 할 때 협업농장에서 하는 일이나 공부를 같이 많이 했어요.
Q. 단순한 시작이었지만 그렇게 지내게 된 곳에서 벌써 7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세빈이 이곳에서 처음 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봐서 그런지 가끔은 도서관과 세빈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해요. 언제까지 이곳에서 일하게 될 것 같나요? 그리고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면서 느끼는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요?
제가 원래 돌아다니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인데 여기서 왜 이렇게 오래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원래 좀 단순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생각은 되게 복잡한데 삶을 대하는 태도가요. 여기서 지낸 것도 정신 차려 보니까 ‘어머, 벌써 3년이 지났잖아?’ ‘5년?’ ‘7년?’ 이런 식이었어요. 저는 앞으로 이 곳에 얼마나 더 있을까요? 저도 그게 정말 궁금해요.
저는 한 지역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니라서 딱히 고향이랄 곳이 없거든요. 지금까지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곳이 홍성이에요. 가장 큰 장점은 편하고 익숙하다는 거죠. 안정감의 범위가 크다고 해야 하나. 어디 다른 지역에 멀리 갔다가 마을로 들어오는 굴다리를 내려오는 순간 ‘아, 왔다. 집이다.’하는 안정감. 언니도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너무 익숙한 그 감정이 단점이기도 해요. 저는 재밌는걸 좋아하는데 여기에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자연환경의 측면에서도 큰 산이 있거나 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이 깨끗한 물이나 아주 큰 나무 같은 것도 없고. 그런 게 좀 아쉽긴 해요.
Q. 제가 보기에 세빈이 일을 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오는 거 안 막고, 가는 것도 안 막는다’ 주의 같거든요. 저는 이게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엄청나게 열린 마음과 그만큼의 능력이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리고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저도 원래는 많이 휘둘리고 그랬어요. 너무 많이 휘둘려서 이제는 좀 무뎌진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은 정신없이 바빠서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는 노력도 많이 해요. 우선 제 탓을 엄청 많이 하고요. 그 다음 상대에 대한 잘못도 인정해요. ‘나도 못났지만 저 사람도 못났다.’ 이런 식으로요. 서로의 잘못을 알아채고 인정하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Q. 저는 세빈이 굉장히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었군요. 그런 다양한 노력들 중 또 다른 갈래로 세빈이 꾸준히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작업들도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좋아하는 게 많으니까 회복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거든요.
실제로 스트레스를 푸는 건 자거나 인터넷 쇼핑으로 푸는데요.(웃음)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거나 음악이나 영화, 책을 보고 듣는 것도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도 제가 말을 하도 못 하고 담아두는 말이 많아지니까 그런 말들을 어디든 꺼내 놓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말을 하지 못 해서 우울하고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싫어서 그런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풀고 싶었어요.
그렇게 일기나 글을 쓰는 것에서 시작해서 작은 책을 만들고 사진을 찍거나 이런저런 작업들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하지 못하는 말을 하는 거니까 누가 봐줬으면 좋겠는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하는 행위가 재미있고 그것이 저에게 주는 영향이 또 있어서 크게 연연하지는 않아요.


세빈의 작업물들
Q. 그러면 평소 크게 고민할 거리가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요즘 고민이 있나요?
고민 많죠. 너무 많아서 뭐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최근에 동네 친구랑 이런 얘기를 했어요. ‘옛날에는 기쁜 것도 많고 슬픈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기쁜 것도 슬픈 것도 많이 사라졌다’고요. 감정의 폭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요즘 전처럼 재밌는 게 별로 없거든요. 저는 쓰거나 만들거나 찍거나 하면서 혼자서도 재밌게 노는데 그쪽 두뇌가 아예 멈춰 있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작년에는 대학원 다니면서 서울에 왔다 갔다 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었거든요. 사람들 구경하고. 기차 안이 특히 재밌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올해는 좀 지치고.
최근에는 약간 저만의 유행어 느낌으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매일 너무 바쁘고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고민하면 머리 아프니까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말 안에 맡겨 버리는 거예요. 오늘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어떡하지, 내일 과제 어떡하지, 그러다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관념 안에 일단 몰아넣고 그냥 ‘내 인생’하고 건너뛰어요. 일 하고 일기나 쓰자, 하고요.(웃음)
Q. 저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생에 중요한 어떤 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순간이 있나요?
‘내가 이런 순간 때문에 산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한 번씩 도드라지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매일 지리멸렬한 것은 똑같아도 갑자기 확 바뀌어버리는 순간들이요. 그렇게 생각하면 떠오르는 날이 있는데. 제가 일요일에 도서관에 공부하러 왔다가 우연히 <하류>라는 영화를 봤어요. 보고 나면 너무 힘들어져서 추천해 드릴 수는 없지만, 갑자기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준 영화예요. 아버지랑 아들이 주인공인데. 둘 다 동성애자이고 천장에서 비가 쏟아지는 아파트에 살아요. 되기 가난한 집안인거죠.
그때가 영화의 배경과 같은 여름이었고, 마침 저희 도서관에도 비가 엄청 많이 샜어요. 일요일이니까 도서관에는 아무도 없고 영화와 도서관에서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갑자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진짜 좋아하는 나무가 있었는데 그 당시 한 달 전쯤 나무가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그 나무를 찍으러 갔어요. 왜 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그 당시 좀 우울한 기분이 많이 들었는데, 그 날을 계기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무명의 가수나 밴드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은 ‘나만 알고 싶다’고 하며 부러 소문내지 않고 혼자 좋아하곤 합니다. 저도 세빈과 관계를 맺어갈수록 그런 마음이 들곤 했는데요. 왜냐하면 세빈은 워낙 많은 취향과 취미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재밌는 활동을 많이 하는데 주로 소문내지 않고 혼자 하는 것들을 좋아하잖아요. 그런 사람과 뭔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어지는 심리 때문이랄까. 요즘 세빈을 즐겁게 하는 취미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최근 즐겨 듣는 음악이나 재밌게 본 영화, 혹은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요즘 ‘아오바 이치코’라는 일본 가수 음악을 많이 들어요. 최근엔 거의 이분 노래만 들은 것 같아요. 노래도 좋지만 가사가 너무 좋아요. ‘라디오 헤드’도 좋아하고요. 영화는 요즘 못 본지 오래 되어서 좋아하는 감독을 알려드리면 ‘아녜스 바르다’ 선생님이랑 ‘크리스티안 페촐트’, ‘아키 카우리스마키’ 좋아해요. ‘카우리스마티’는 핀란드 사람인데 시니컬하게 웃기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안 웃길 수도 있는데 저한테는 최고로 웃긴 것 같아요.
책은 요즘 대학원을 다니느라 너무 공부하는 책만 읽어서 좀 지겨워하는 중이기는 한데요.(웃음) 원래 철학책을 소설처럼 읽는걸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읽게 된 책 중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반딧불이의 잔존>이라는 책을 좋아해요. 책에서 ‘민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소수자의 이야기 중에 소수자이기 때문에 잘 들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면 반대로 소수자 바깥에 있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죠. 그것을 어떻게 이미지로 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해요. 이 작가는 그런(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반딧불이에 비유해서 낮에도 빚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도 안 보이는데 깜깜한 밤이 되면 나타난다고, 그렇게 잔존 한다는 이야기를 해요.
이 책을 읽고 저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같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거죠.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요즘 인간/비인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물론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너무 빼먹게 되는 인간이 많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해준 책입니다.
Q. 마지막 질문은 사심을 담아 드린 질문이었는데, 오늘도 재미있는 정보들을 잔뜩 안고 가네요. (웃음) 끝으로,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청소를 잘하는 사람이 되자!

세빈이 일하고 있는 홍동밝맑도서관
노해원 (홍성군 홍동면 주민)
시골에서 삼형제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육아와 축구와 글쓰기 사이에서 균형 있는 삶을 살고 싶지만 언제나 어디론가 기울어지고 맙니다. 축구도 육아도 인생도 매일이 슬럼프이자 과도기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고 있습니다.

2025공익활동가주간의 <활동가인터뷰 프로젝트>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일과 삶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로 기록하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2025년에는 특별히 <광장을 만드는 활동가>를 기획인터뷰로 진행했으며, 공모를 통한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도 더불어 운영했습니다. 활동가 인터뷰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재단>과 <지리산이음>이 함께 기획/운영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일을 하면서 구석에서 바쁜 사람,
홍동밝맑도서관 김세빈 활동가
농촌의 여름은 바쁘다. 모내기를 하고, 작물을 심고, 풀을 뽑고, 순식간에 자라는 것들과 함께 종일 움직여야 하는 계절. 구석구석 조용히 바쁜 동네를 보며 나는 어디선가 웅크리고 있을 사람들을 떠올린다. 고랑과 고랑 사이에 낮게 웅크려 풀을 뽑는 사람, 기계가 닿지 않은 곳에 허리를 굽혀 손모를 내는 사람, 곧게 자란 작물을 옆에서 땀 흘리며 수확하는 사람.
세빈 역시 그런 농촌 사람들의 모습과 닮은 사람이다. 구석에서 바쁜 사람. 어디선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사람. 충남 홍성, 홍동 마을에 있는 홍동밝맑도서관에서 7년째 사서를 하고 있는 세빈을 만나 보았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평생 농촌에서만 살았어요. 지금도 농촌에 살고 있고요. 어쩌다보니 사서가 되어 홍동밝맑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근무하며 농업 농촌 문제에 대한 공부를 함께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Q. 저는 세빈 을 ‘구석에서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무언가 많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최근에는 대학원 논문 심사도 있었고요. 요즘도 작은 책들을 만들고 있나요? 매일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갈 것 같아요. 세빈의 하루 일상이 궁금합니다.
네, 바쁩니다.(웃음) 요즘은 아침 일찍 자전거를 타면서 하루를 시작해요.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까 운동을 좀 해야겠다 싶어서요. 자전거로 옆 마을 농장에 출근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따라 갔다가 돌아와요. 5시 반쯤 일어나서 6시 반에 출발하면 7시 반쯤 집에 도착하고, 씻고 출근해서 도서관에 오면 8시 반쯤 돼요.
이때부터 도서관을 여는 10시까지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노래 틀어놓고 오늘 어떤 일을 할지 생각도 하고 멍도 때리고 책을 보거나 그러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요. 잘 지켜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간에 되도록 책을 보려고 하긴 해요. 제가 도서관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 일을 알려주시던 선생님이 하루에 2시간은 책을 읽어야 도서관에서 일 할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10시부터는 도서관 일을 시작해요. 화장실 청소 하는 것을 가장 먼저 하고 그 다음은 책 정리나 도서관에 필요한 일들을 하죠. 저희 도서관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어서 일이 그렇게 많진 않아요. 그래서 나머지 시간에는 마을에 필요한 일이나 부족한 경제활동을 위한 일들을 받아서 합니다. 도서관을 비울 수는 없으니까 웹진이나 자료집 만들기 교정교열 보는 일을 해요.
Q. 지금 살고 있는 홍동 마을에 있는 풀무학교를 졸업 하셨지요. 학교를 다닐 때부터 마을에 남아야겠다고 생각했나요? 마을에 남게 된 계기와 도서관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대부분 우연의 일치였던 것 같은데요. 원래 책을 좋아했지만 ‘사서가 될 거야’라거나 ‘마을에 남아 도서관에서 일해야지’같은 명확한 목적이나 이유가 있진 않았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간은 여행도 가고 다른 지역에서 살기도 했고요. 제가 홍성에 오기 전에 부천에서 잠깐 지냈는데 그게 저의 첫 도시 생활이었어요. 그곳에 살면서 저는 도시생활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막연히 지역에 내려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가 우연히 홍성에 살고 있던 친구네 놀러왔어요. 그런데 도서관에서 일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살게 됐어요. 단순하게 시작 한 거죠.
처음에는 친구가 일하고 있던 ‘협업농장’에서도 같이 일했어요. 거기서 정민철 선생님이 농촌에 있는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거니까 지역과 농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도서관 일을 하기 전에 계셨던 선생님들은 직접 농사를 짓기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지역 도서관이기 때문에 책만 아는 게 아니라 농업 농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요. 저도 도서관에서 주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업을 하고 계시는 분들일 테니까 농사 짓는 것도 알아야 하고 농촌에 대한 공부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처음 도서관 일을 할 때 협업농장에서 하는 일이나 공부를 같이 많이 했어요.
Q. 단순한 시작이었지만 그렇게 지내게 된 곳에서 벌써 7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세빈이 이곳에서 처음 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봐서 그런지 가끔은 도서관과 세빈이 함께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곤 해요. 언제까지 이곳에서 일하게 될 것 같나요? 그리고 한 지역에 오래 머물면서 느끼는 장점과 단점이 있을까요?
제가 원래 돌아다니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인데 여기서 왜 이렇게 오래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원래 좀 단순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생각은 되게 복잡한데 삶을 대하는 태도가요. 여기서 지낸 것도 정신 차려 보니까 ‘어머, 벌써 3년이 지났잖아?’ ‘5년?’ ‘7년?’ 이런 식이었어요. 저는 앞으로 이 곳에 얼마나 더 있을까요? 저도 그게 정말 궁금해요.
저는 한 지역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니라서 딱히 고향이랄 곳이 없거든요. 지금까지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곳이 홍성이에요. 가장 큰 장점은 편하고 익숙하다는 거죠. 안정감의 범위가 크다고 해야 하나. 어디 다른 지역에 멀리 갔다가 마을로 들어오는 굴다리를 내려오는 순간 ‘아, 왔다. 집이다.’하는 안정감. 언니도 그렇지 않나요? 그런데 너무 익숙한 그 감정이 단점이기도 해요. 저는 재밌는걸 좋아하는데 여기에 제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거든요. 자연환경의 측면에서도 큰 산이 있거나 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물이 깨끗한 물이나 아주 큰 나무 같은 것도 없고. 그런 게 좀 아쉽긴 해요.
Q. 제가 보기에 세빈이 일을 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오는 거 안 막고, 가는 것도 안 막는다’ 주의 같거든요. 저는 이게 말로는 쉬워 보이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엄청나게 열린 마음과 그만큼의 능력이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그리고 일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저도 원래는 많이 휘둘리고 그랬어요. 너무 많이 휘둘려서 이제는 좀 무뎌진 것 같기도 하고 요즘은 정신없이 바빠서 그런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일부러 신경 쓰지 않으려는 노력도 많이 해요. 우선 제 탓을 엄청 많이 하고요. 그 다음 상대에 대한 잘못도 인정해요. ‘나도 못났지만 저 사람도 못났다.’ 이런 식으로요. 서로의 잘못을 알아채고 인정하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어요.
Q. 저는 세빈이 굉장히 무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었군요. 그런 다양한 노력들 중 또 다른 갈래로 세빈이 꾸준히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작업들도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좋아하는 게 많으니까 회복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거든요.
실제로 스트레스를 푸는 건 자거나 인터넷 쇼핑으로 푸는데요.(웃음)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거나 음악이나 영화, 책을 보고 듣는 것도 많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도 제가 말을 하도 못 하고 담아두는 말이 많아지니까 그런 말들을 어디든 꺼내 놓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말을 하지 못 해서 우울하고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게 싫어서 그런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풀고 싶었어요.
그렇게 일기나 글을 쓰는 것에서 시작해서 작은 책을 만들고 사진을 찍거나 이런저런 작업들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하지 못하는 말을 하는 거니까 누가 봐줬으면 좋겠는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하는 행위가 재미있고 그것이 저에게 주는 영향이 또 있어서 크게 연연하지는 않아요.
세빈의 작업물들
Q. 그러면 평소 크게 고민할 거리가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요즘 고민이 있나요?
고민 많죠. 너무 많아서 뭐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최근에 동네 친구랑 이런 얘기를 했어요. ‘옛날에는 기쁜 것도 많고 슬픈 것도 많았는데 지금은 기쁜 것도 슬픈 것도 많이 사라졌다’고요. 감정의 폭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요즘 전처럼 재밌는 게 별로 없거든요. 저는 쓰거나 만들거나 찍거나 하면서 혼자서도 재밌게 노는데 그쪽 두뇌가 아예 멈춰 있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작년에는 대학원 다니면서 서울에 왔다 갔다 하는 행위 자체가 재미있었거든요. 사람들 구경하고. 기차 안이 특히 재밌었어요. 그런데 그것도 올해는 좀 지치고.
최근에는 약간 저만의 유행어 느낌으로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매일 너무 바쁘고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는데 너무 고민하면 머리 아프니까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말 안에 맡겨 버리는 거예요. 오늘 할 일이 너무 많은데 어떡하지, 내일 과제 어떡하지, 그러다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관념 안에 일단 몰아넣고 그냥 ‘내 인생’하고 건너뛰어요. 일 하고 일기나 쓰자, 하고요.(웃음)
Q. 저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인생에 중요한 어떤 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순간이 있나요?
‘내가 이런 순간 때문에 산다’하는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한 번씩 도드라지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매일 지리멸렬한 것은 똑같아도 갑자기 확 바뀌어버리는 순간들이요. 그렇게 생각하면 떠오르는 날이 있는데. 제가 일요일에 도서관에 공부하러 왔다가 우연히 <하류>라는 영화를 봤어요. 보고 나면 너무 힘들어져서 추천해 드릴 수는 없지만, 갑자기 정신을 번쩍 들게 해준 영화예요. 아버지랑 아들이 주인공인데. 둘 다 동성애자이고 천장에서 비가 쏟아지는 아파트에 살아요. 되기 가난한 집안인거죠.
그때가 영화의 배경과 같은 여름이었고, 마침 저희 도서관에도 비가 엄청 많이 샜어요. 일요일이니까 도서관에는 아무도 없고 영화와 도서관에서 떨어지는 비를 보면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갑자기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진짜 좋아하는 나무가 있었는데 그 당시 한 달 전쯤 나무가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그 나무를 찍으러 갔어요. 왜 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그 당시 좀 우울한 기분이 많이 들었는데, 그 날을 계기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Q. 무명의 가수나 밴드를 좋아하게 되었을 때 어떤 사람은 ‘나만 알고 싶다’고 하며 부러 소문내지 않고 혼자 좋아하곤 합니다. 저도 세빈과 관계를 맺어갈수록 그런 마음이 들곤 했는데요. 왜냐하면 세빈은 워낙 많은 취향과 취미를 가지고 있고 그만큼 재밌는 활동을 많이 하는데 주로 소문내지 않고 혼자 하는 것들을 좋아하잖아요. 그런 사람과 뭔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어지는 심리 때문이랄까. 요즘 세빈을 즐겁게 하는 취미활동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최근 즐겨 듣는 음악이나 재밌게 본 영화, 혹은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요즘 ‘아오바 이치코’라는 일본 가수 음악을 많이 들어요. 최근엔 거의 이분 노래만 들은 것 같아요. 노래도 좋지만 가사가 너무 좋아요. ‘라디오 헤드’도 좋아하고요. 영화는 요즘 못 본지 오래 되어서 좋아하는 감독을 알려드리면 ‘아녜스 바르다’ 선생님이랑 ‘크리스티안 페촐트’, ‘아키 카우리스마키’ 좋아해요. ‘카우리스마티’는 핀란드 사람인데 시니컬하게 웃기다고 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은 안 웃길 수도 있는데 저한테는 최고로 웃긴 것 같아요.
책은 요즘 대학원을 다니느라 너무 공부하는 책만 읽어서 좀 지겨워하는 중이기는 한데요.(웃음) 원래 철학책을 소설처럼 읽는걸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읽게 된 책 중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의 <반딧불이의 잔존>이라는 책을 좋아해요. 책에서 ‘민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소수자의 이야기 중에 소수자이기 때문에 잘 들리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면 반대로 소수자 바깥에 있기 때문에 들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죠. 그것을 어떻게 이미지로 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해요. 이 작가는 그런(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반딧불이에 비유해서 낮에도 빚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도 안 보이는데 깜깜한 밤이 되면 나타난다고, 그렇게 잔존 한다는 이야기를 해요.
이 책을 읽고 저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같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 거죠.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요즘 인간/비인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물론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서 너무 빼먹게 되는 인간이 많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해준 책입니다.
Q. 마지막 질문은 사심을 담아 드린 질문이었는데, 오늘도 재미있는 정보들을 잔뜩 안고 가네요. (웃음) 끝으로,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청소를 잘하는 사람이 되자!
세빈이 일하고 있는 홍동밝맑도서관